임영운 교수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냐”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2-12 06: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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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운 교수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냐” [쿠키인터뷰]
임영운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끝까지 자리를 지켜서 여기까지 온 거로 생각해요. 만약 다른 분들도 자리를 지켰다면 더 훌륭한 분이 이 자리에 있었을 겁니다.”

지난달 제18회 동북아생물보전대상에서 수상한 임영운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는 그저 오래 자리를 지킨 것을 수상 이유로 설명했다. 이전까지 주로 식물 분야 연구자들이 상을 받았지만, 올핸 배꼽낙하산버섯 등 115종의 신종과 붉은달걀광대버섯 등 190종의 미기록 진균을 발굴한 공적으로 임 교수가 수상했다.

비가 오고 짙은 안개에 건물, 하늘의 경계가 불분명하던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화학 물질 냄새가 공기 중에 섞인 연구실에서 임 교수는 “동물이나 식물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이 많다. 곤충 마니아도 있다”라며 “하지만 곰팡이엔 별로 관심이 없다. 없어도 되는 줄 아는 거다”라고 말했다. 생물다양성, 그 중에서도 곰팡이 등을 포함하는 진균이라는 작은 세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곰팡이가 없으면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기도, 빵을 먹기도 어렵다. 그만큼 자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곰팡이, 버섯 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잠깐 방심하면 귤이나 음식을 뒤덮고 환기가 잘 안 되는 집을 점령하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일상에서도 이런 인식이 드러난다.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감독 김한민)엔 “독버섯처럼 번지는 두려움”이란 대사가 나온다. 임 교수는 이 역시 오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독버섯은 굉장히 천천히 자란다. 또 자연‧사람에 이로운 진균도 많다. 임 교수가 발견한 해양균류 중에는 플라스틱 등을 분해하거나, 항생제를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쓰일 진균도 있다.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냐…자연과 친해져야”

임 교수는 인간이 자연의 중심이라는 전제에서 생물다양성 개념이 흐릿해지고 환경오염, 기후 위기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이를 바꾸려면 수직이 아닌 수평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다른 생물이 있어 내가 있을 수 있고, 내가 있어 다른 생물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순환을 만든다고 믿는다. 이 관점이 쓰레기를 덜 버리고 동‧식물, 진균 등 자연 자체를 보호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임 교수는 설명했다.

임 교수는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니 잘 관리해서 인류가 영원히 번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전제에서 무언가 행동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류가 지금 우세한 종이긴 하지만, 길게 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지구 전체 주기를 들여다보면 어느 한 종이 우세하다가도 빙하기나 소행성 충돌 등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종이 나타나는 식으로 순환한다. 인간 역시 순환하는 생태계 속 일부분이다.

임영운 교수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냐” [쿠키인터뷰]
임영운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어릴 때부터 자연과 친해져야 이런 관점이 삶에 스며들 수 있다는 것도 그의 철학 중 하나다. 온라인 세상을 많이 접하면 자연을 봐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다. 임 교수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곳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함께 한다”라며 “자연에 감사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은 이런 기회가 적다 보니, 근처에 산이 없어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아쉬워했다.

“놀면서 연구할 수 있다기에…기초학문 탄탄해야”

‘30여 년 동안 진균 분류와 계통 연구’ 외길을 걸어 왔다. 전공 분야에 처음 발을 디딘 건 ‘교수님이랑 산도 다니고 놀면서 연구할 수 있다’는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동력은 ‘즐거움’이다. 하다 보니 즐거웠다. 즐거워서 몰입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임 교수는 “다들 촉망받는 분야로 빠지고 있었다. 내가 하는 분야는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게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라며 “깊게 빠져보니 처음 발을 디딜 때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어느 순간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다. 이게 내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깊이에서 넓이로’. 그의 요즘 고민거리다. 임 교수는 “진균 또는 곰팡이가 이로운 역할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도 많이 알아줬으면 한다. 나 역시도 연구에 많이 집중해왔다”라며 “이제라도 곰팡이, 버섯에 대한 좋은 점을 알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대중을 향한 첫걸음으로 어린이를 위한 교재 제작을 고려하고 있다.

기초과학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 지침으로 연구비‧인건비가 줄어들며 연구 자원인 인력들을 유인할 요인이 더욱 적어졌다. 임 교수는 “기초학문은 1~2년 내 또는 10년 내 바로 성과를 내는 학문이 아니다”라며 “그렇지만 기초학문이 쌓여야만 다른 응용 분야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예산 증감에서 중요한 건 ‘예측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예산이 늘어나면 좋다”라며 “그러지만 항상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다만 예측이 가능해야 우리도 준비할 수 있다. 예고 없는 변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자인 에른스트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우상이란 거대한 것에 집중하며 고통 받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것의 미덕을 고집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 교수가 학문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매 강의 마지막 시간에 학생들에게 꼭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각자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한 나무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받고 역할을 충분히 잘하는 수천 개의 이파리처럼, 우리 역시 그러면 돼요. 진화학에선 끝까지 살아남은 놈이 최강자입니다. 우리도 지금 여기 남아 있지 않나요.”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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