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다음은 동생” 이것이 학대가 아니라면 [자식담보대출⑦]

-아들 보육원 맡긴 아버지…만난 뒤 자립정착금 가져가
-가정 재정 정보 격차 악용…‘다음은 동생’ 협박에 거절 어려워
-“청년 혼자 힘으로 벗어나기 힘들어…도움 필요”

기사승인 2024-01-10 1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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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너 다음은 동생” 이것이 학대가 아니라면 [자식담보대출⑦]
강우진씨는 초등학생 때 보육원에 맡겨졌다. 성인이 돼서 만난 아버지는 자립정착금을 요구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강우진(26)씨가 13세 되던 해, 아버지는 그를 보육원에 맡겼다. 강씨 형도 함께였다. 시설에 있는 동안 누구도 형제를 찾지 않았다. 성인이 된 뒤 강씨는 노숙을 전전했다. 두 손에 남은 건 자립정착금 1000만원. 그에게 전부였다.

강씨는 22세가 돼서야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그 돈, 너희가 가지고 있으면 생각 없이 쓰지 않겠어? 나한테 맡기는 건 어때.” 아버지가 말했다. 강씨는 그의 모든 것을 건넸다. 아버지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생활비를 보낸 적은 없었다. 강씨는 소액결제로 생계를 이어갔다. 쓴 돈은 그대로 빚이 됐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버지는 새차를 끌고 형제 앞에 나타났다. 이제라도 함께 여행 다니며 추억을 만들자고 했다. 강씨는 차를 보자마자 알았다. 저게 내 돈이라는 걸. 하지만 묻지 못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이 생생했다. 자립정착금에 돈을 보태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려던 형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8월 쿠키뉴스와 만난 강씨는 “아버지가 무서워 돈을 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학대였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의 경제 활동을 통제하거나, 낭비·채무로 자녀에게 빚을 지게 하는 것은 경제적 학대다. 자녀 의사에 반해 경제 주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거절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경제적 손실과 그로 인한 불이익은 온전히 자녀가 떠안는다.

△채무 전가 △지속적 금전 요구 △지출 의심 △경제적 방임 △경제적 통제 등이 경제적 학대에 해당한다.

“너 다음은 동생” 이것이 학대가 아니라면 [자식담보대출⑦]
채무 전가, 지속적 금전 요구 등 부모의 경제적 학대에서 자녀가 혼자 힘으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사진=박효상 기자

경제적 학대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다른 유형의 가정폭력과 함께 이뤄진다. 지난 2021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사례 분석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99.4%가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유형 중 2가지 이상의 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공개한 판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법원은 도박에 중독돼 아내와 자녀 명의를 도용하고 폭력을 가한 남편에 대해 이혼 결정을 내렸다. 남편 A씨(58)는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고등학생 자녀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체납해 자녀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또 망치를 들고 자녀를 위협하는 등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학대는 정보격차가 큰 관계에서 발생하기 쉽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보유비율, 수입과 지출 규모 등 가계 재정 정보를 쥐고 있는 것은 부모다. 자녀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부모는 정보격차를 악용해 자녀를 속일 수 있다. 설령 자녀가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자녀의 정신적, 경제적 지주이기 때문이다.

돈을 주지 않으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보복을 한다는 점도 있다. 다른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 쿠키뉴스가 취재한 회생법원에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20대 B씨는 아버지에게 사업자 명의를 빌려줄 수 밖에 없었다. “명의를 주지 않으면, 네 동생 이름을 쓸 거야.”라는 협박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아버지의 사업은 실패했다. B씨에게는 약 3억원의 빚만 남았다.

한병선 청년의뜰 본부장은 “부모의 금전 요구가 경제적 학대라는 것을 알아차려도 자녀 혼자서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외부 개입이 있어야 경제적 학대 피해 청년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금방 갚을게 한 번만 도와줘” 악당 부모 탄생기 [자식담보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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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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