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자식담보대출⑥]

-소득 없는 청년들, 취약차주의 늪에 빠져
-친구·애인에 가족마저 떠나가…사회적 기반 상실
-우울·불안·자살까지…빚과 반비례하는 정신건강

기사승인 2024-01-10 11:00:12
- + 인쇄

공양미 300석. 심 봉사가 덜컥 시주를 약속했을 때, 딸 심청의 마음은 어땠을까. 인당수에 뛰어들기 위해 뱃머리에 선 심청.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아버지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을까. 
부모의 빚을 대신 갚는 청년은 2024년에도 존재한다. 적금을 깨 생활비를 보태고, 대출을 받아 부모 빚을 메운다. 부모 자녀 간 모든 금전 거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탁은 자녀의 경제 기반을 부수고 회복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키뉴스는 지난해 하반기 부모의 금전 요구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취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협박을 듣거나 폭력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죽음까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정사로 축소돼 드러나지 못했던 이야기다. [편집자주]
엄마,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자식담보대출⑥]
부모의 금전 요구에 응한 청년들은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단절, 건강 문제를 겪게 된다. 지난해 10월 쿠키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한 신민준씨는 이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서울 명문 예대생 그리고 택배노동자. 신민준(31)씨의 삶은 대출을 받기 전과 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신씨는 적지 않은 금액을 대출받아 줬다. 이후 어머니의 요구는 점점 커졌다. 제2금융권, 대부업체, 적금, 신용카드 대여. 부탁이 늘었지만 갚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모든 빚은 신씨의 몫이 됐다. 쉬지 않고 일하는데도 늘 돈에 쫓겼다. 불어난 이자는 발목을 잡았다. 결국 신용불량자 딱지가 붙었다.

신씨만의 일이 아니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부모의 금전 요구를 들어준 청년 대다수는 ‘취약차주’가 된다. 취약차주는 채무 상환 능력이 부족해 대출 연체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말한다. 통상 연 소득 3500만원 이하 또는 개인신용평점 하위 20%이면서 연 소득 4500만원 이하인 이들이다.

취약차주는 신용불량자가 되기 쉽다. 대다수 은행·신용 거래는 중단된다. 신용을 중시하는 회사 입사도 어려워진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입장에서는 치명타다. 정부의 청년지원혜택도 받지 못한다. 신씨는 고정비를 줄이고자 청년전세자금대출 등을 알아봤지만 신용불량 상태에서는 받을 수 없었다. 신씨는 “대출이 어렵자 동생에게까지 대신 받아달라고 부탁했다”며 “내가 쓰지도 않은 돈 때문에 왜 이런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엄마,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자식담보대출⑥]
어린 나이에 채무에 시달리게 된 청년은 사회적 관계를 다질 기회를 놓칠 확률이 높다. 정신적 고통에도 시달린다. 빚의 규모와 정신건강은 반비례하기도 한다. 사진=박효상 기자 

신씨의 위기는 경제적 상황에 그치지 않았다. 관계 단절로도 이어졌다. ‘신용카드 빌려달라’, ‘대출 서류를 제출해야 하니 신분증을 복사해놔라’. 어머니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지친 신씨는 어머니와 연락을 끊었다. 주변 사람도 신씨의 곁을 떠났다. 애인과 함께 있을 때, 추심원이 찾아왔다. 애인은 놀라 이유를 물었다. 설명을 들은 애인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지난 2022년 발표된 ‘청년 과중채무의 본질과 채무조정경험’ 논문에서는 채무조정을 경험한 참여자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을 많이 잃었다고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사회적 관계를 만들 기회마저 놓친다는 것이다. 대학, 직장, 취미활동 등에서 만나는 사람은 인맥의 토대가 된다.

정신적 고통도 크다. 신씨는 빚을 갚기 위해 ‘노가다’로 불리는 일용직 건설 근로, 택배상하차, 임상시험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팍팍한 방학을 보냈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몸을 다친 어느 날, SNS 알림이 울렸다. 방학을 맞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동기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유럽 예술 페스티벌에 가려던 돈을 어머니에게 줘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씨는 그럴 때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어머니의 대출 요구, 지속되는 가난, 대인관계에 속 끓이던 그의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빚과 정신건강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 빚이 감당할 수 없게 커질 경우, 우울·불안·심리적고통·정신질환·자살 생각이 증가한다. 돈을 모아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 역시 떨어진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가계부채 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 악화로 개인의 부채가 증가했을 당시 자살률도 급격하게 상승했다.

“금방 갚을게 한 번만 도와줘” 악당 부모 탄생기 [자식담보대출]

엄마,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자식담보대출⑥]
↑ 위 이미지를 누르면 [자식담보대출]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부모의 빚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데이터, 영상, 그래픽 등으로 담았습니다. 피해 청년이 남긴 국회 청원과, 다른 독자들의 댓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엄마,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자식담보대출⑥]
엄마,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자식담보대출⑥]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