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골든타임” ‘필수의료 패키지’에 환자·의료계 잇단 비판

기사승인 2024-02-04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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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골든타임” ‘필수의료 패키지’에 환자·의료계 잇단 비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브리핑을 하며 필수의료 패키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두고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제히 우려와 반발이 터져 나온다. 제도 시행, 정착 과정에서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직후 의사 사회가 들끓었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가지 키워드에 맞춰졌다. 

보건복지부는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예고했던 대로 오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겠다고 못을 박았다. 복지부는 오는 2035년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추산하며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필수의료 수가를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필수의료 살리려면 재정 투입 계획부터 세워야”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내놓은 이번 정책들이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급여·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사망사고와 미용·성형을 제외한 제한적 특례 적용 범위 △개원 면허와 면허갱신제 도입 등을 두고선 “의료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발표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정부가 의료 과실로 인한 의료인의 사법 리스크 완화를 위해 추진하겠다고 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 대해서도 “특례 적용 범위에 사망사고와 모든 진료 과목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1일 입장문을 내고 “필수의료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기 위해선 재정 투입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며 “기존 건강보험 재정을 재분배하는 수준의 보상체계 조정이 아닌, 별도 기금을 설치·운영해 국가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의대 정원 확대 추진도 멈춰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의협은 “의료계와 지속적인 협의를 갖고 정책을 보완한 뒤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의료계의 거친 표현들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 등이 참여하는 바른의료연구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는커녕 대한민국 의료 자체를 말살시키는 수준의 재앙적 대책”이라며 “의사 노예화 대책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대부분 수 년 전부터 답습해왔던 대책들로 새로울 것이 없다”며 “필수의료 수가 대책이 실현되려면 재원 마련 대책이 가장 중요할 텐데 현실적으로 지금의 건강보험 시스템으로 재원 마련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행위별 수가로 지원이 어려운 필수의료 영역에 대해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지원할 계획이다. 또 업무 강도가 높고 자원 소모가 많지만 저평가된 필수의료 항목은 상대가치 점수를 선별해 인상할 예정이다. 

제42대 차기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잇따라 정부 비판에 가세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출마 기자회견에서 “정부 정책이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는 방안인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죽이려는 정책은 아닌지 세부 내용 하나하나 우려가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단군 이래 최악의 보건의료망책”이라며 “개원 진입장벽을 높이고 각종 규제로 개원가를 비롯한 의료환경을 황폐화시켜 의사들을 반강제적으로 고위험 고난도 저보상 진료 영역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임상수련과 연계한 단계적 개원 면허 도입 검토에 착수할 방침이다. 전문의 자격도 따지 않고 무분별하게 개원하는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이 대표로 있는 미래의료포럼도 “오늘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는다”면서 “정부가 내놓은 결과물은 의사들에게 허탈과 분노를 넘어 절망을 안기고 있다”고 전했다.

“의료개혁 골든타임” ‘필수의료 패키지’에 환자·의료계 잇단 비판
사진=박효상 기자


“의료사고 피해자·유족 입증 책임 부담 커질 것”

의료계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들도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평가절하했다. ‘좋은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본부’와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공동성명을 내고 “공공의료 강화라는 핵심 대책이 없다”고 질타했다.

졸업 후 지역 필수의료기관 근무를 계약한 의대생에게 장학금과 수련비용, 교수 채용 할당, 교육·주거를 패키지로 지원하는 ‘지역 필수의사제’는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단체는 “의료인력을 공적으로 양성하고 공공에 배치할 정책이 없다면 지금처럼 주로 돈벌이 진료에 나설 의사들이 배출될 것”이라며 “영리적인 의료환경의 문제로 발생하고 있는 의료 붕괴 현상을 더 많은 시장주의로 해결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자단체들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계획을 규탄하며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8개 환자단체가 참여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중과실로 생긴 의료사고와 사망 또는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의료사고까지 형사책임을 면제하거나 면제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핵심은 의료인의 배상책임보험과 공제조합 가입을 의무화 해 의료사고 피해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경우 의료인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망과 뺑소니 등 중과실 사고를 제외한 교통사고 때 가해자가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일정 요건을 갖춘 보험에 가입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유사하다. 복지부는 앞으로 꾸려질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할 계획이다.

환자단체들은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입증 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적 조치부터 추진해야 한다고도 했다. 연합회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아닌 의료인의 의료사고 설명 의무법, 의료인의 의료사고 안심 사과법,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법 등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의 울분을 풀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정부의 추진 의지는 확고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8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정책 패키지를 공개하며 “지금이 의료개혁을 추진할 골든타임”이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이 일부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해 필수의료에 10조원 이상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료 남용을 부추기고, 시장을 교란하며, 건보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비급여와 실손보험제도를 확실하게 개혁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025년 입시부터 도입될 의대 입학 정원 확대 규모를 이르면 다음주 중 발표할 계획이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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