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소생’·‘건보재정 확보’ 칼 빼든 정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 발표
진료 횟수에서 난이도·위험·시급성 중심으로 개선
공공정책수가 등 대안적 수가지불제도 도입
건보 내 ‘혁신 계정’ 마련…2조원 투자 계획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방침 재차 확인

기사승인 2024-02-04 15: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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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 소생’·‘건보재정 확보’ 칼 빼든 정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부가 지속 가능한 국민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지출구조 조정 등 대대적인 건강보험 구조 개혁에 나선다. 고령화로 인해 의료비 지출은 급증하고, 저성장 기조에 저출산까지 맞물려 총 인구 수가 줄면서 보험료 수입에 따른 안정적 재정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을 4일 발표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가입자와 공급자 단체, 관계 기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여덟 차례 추진단·자문단 회의를 갖고 이번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지난 2016년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신설된 5년 단위 종합계획은 올해가 두 번째다.

최근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로 인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의 건강보험 정책은 보장률 제고에 편중돼 △수도권·대형병원 쏠림에 의한 지역의료 공백 △진료량 감소와 보상 수준 불균형으로 인한 필수의료 기피 △본인부담 감소에 따른 불필요한 의료 이용 증가 등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복지부는 △지불제도 개혁 △의료서비스 지원체계 개선 △의료 남용 차단과 보험재정의 효율적 관리 △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과 치료 기회 확대 등 4대 종합계획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건강보험료율 8% 법정 상한 사회적 논의 추진

먼저 복지부는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현행 8%인 건강보험료율의 법정 상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키로 했다. 지난해 기준 주요국의 보험료율을 보면 일본 10~11.82%, 프랑스 13.25%, 독일 16.2% 등이다. 보험료율 상한선은 지난 1977년 건강보험 시행 당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무분별한 보험료 인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장치다. 지난해 9월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노인 의료비 지출 증가폭이 워낙 커 오는 2029년이면 보험료율 상한 8%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고 지원방식과 적정 지원 규모도 재검토한다. 법령상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국고로 지원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관행적 예상 수입액 과소 추계로 실제 지원율은 14%대에 머물고 있다. 현재 국고 지원은 한시 규정으로 2027년까지만 적용된다.

수가체계는 종별 환산지수 계약에 따라 책정되는 행위별 수가의 일괄 인상 구조에서 벗어나 저평가된 필수의료 분야를 집중적으로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행위별 수가제 방식은 진료 행위의 양에 따라 보상이 부여되는 구조라 진료 성과보다는 진료 횟수에 치중하는 병원이 많고, 이 같은 현상이 필수의료 붕괴를 불러왔다는 진단에서다. 행위별 수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 의원, 약국 등 유형별 협상을 통해 매년 결정하는 ‘환산지수’에 의료행위 가치를 업무량과 인력, 위험도 등을 고려해 매기는 ‘상대가치점수’를 곱하고 여기에 각종 가산율을 반영해 책정한다.

복지부는 의료 난이도와 시급성, 의료진 숙련도, 당직·대기시간, 지역 격차 등 현재 행위별 수가 산정 시 제대로 감안되지 않는 사항들을 반영하기 위해 ‘보완형 공공정책수가’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종료시점을 명시하고, 주기적 평가를 통해 정책 효과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지원금액을 줄이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아울러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기존 보상 구조와 다른 ‘대안적 지불제도’의 적용 범위를 넓힌다. 대안적 지불제도는 의료 행위 건수를 따지기보다 진료의 질과 성과 달성 여부에 따라 의료기관의 손실을 차등 보상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시작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 보상 시범사업’, 올해 추진하는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은 중중응급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 24시간 이내 치료를 완료하면 평일 주간에는 기존 50%에서 100%, 평일 야간·공유일 주간에는 100%에서 150%, 공휴일 야간에는 100%에서 200%로 수가를 인상하는 것이다. 

오는 2028년에는 과소진료 등 포괄수가제의 단점을 보완한 형태의 ‘신포괄수가제’를 본사업으로 전환해 적용 의료기관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입원료 등 기본적 서비스는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부담하는 형태의 포괄수가 방식과 수술·시술 등을 행위별 수가로 각각 보상하는 방식이다. 이는 미국의 ‘묶음지불제도’와 유사하다.

복지부는 건보 재정에 ‘혁신 계정’을 도입해 지불제도 개혁을 위한 모형을 개발하는 데 총 요양급여 비용의 2%인 약 2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심사 및 평가도 의료 자원의 공급보다 성과 중심의 통합체계로 전환하고, 이를 위해 약 1조5000억원의 평가 재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상대가치 점수 조정 주기는 기존 5~7년에서 2년으로 대폭 단축하고, 매년 상대가치점수를 조정하는 체계로 바꿔 나간다.


‘필수의료 소생’·‘건보재정 확보’ 칼 빼든 정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그래픽. 보건복지부


병원 적게 가면 보험료 10% 바우처 지급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과잉진료 억제 차원에서 연간 의료기관 이용이 현저히 적은 건강보험 가입자에게는 전년도에 납부한 보험료의 10%를 바우처 형태로 되돌려준다. 병원과 약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의 연간 한도는 12만원이다. 복지부는 의료 이용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20~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한 후 전체 연령으로 가입자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유튜버 등 일시소득이 많은 새로운 형태의 직업군에 대한 소득 보험료 부과 방식도 검토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유튜버의 일시소득은 기존에 없던 형태의 소득으로 과세당국에서도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기존에 부과를 면제하거나 누락했던 게 아니다”라며 “새로운 소득 형태에 대한 부과방식을 만들고, 소득을 어떻게 파악할지 고민해보겠다”라고 설명했다.

‘건강생활실천 지원금’의 지원 대상도 확대된다. 건강생활실천 지원금은 고혈압과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걷기 등 스스로 건강생활을 실천하거나 의원에서 제공하는 질환 관리 서비스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경우 연간 최대 8만 포인트를 적립하고, 이를 지정된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제도다. 

질병 예방부터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에 이르는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립대병원 등을 중심으로 지역 의료기관 간 연계·협력도 강화한다. 맞춤형 건강검진과 다제약물 관리 등 만성질환에 대한 포괄적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노년층 욕구에 부합하는 거주지 중심 생애 말기 의료 지원도 추진한다.

취약계층에 대해선 본인부담상한제와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연소득이 336만원 미만인 경우 건보료 체납이 있더라도 의료 이용 시 건보 혜택 제한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암, 희귀난치질환 등에 대한 약제비 부담을 완화하고, 급성기 환자의 간병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 때 지적한 혼합진료는 재차 금지 방침을 강조했다. 혼합진료는 비싸거나 크게 필요치 않은 비급여 진료를 급여 진료에 끼워 파는 식으로 행하는 경우를 말한다. 백내장 수술과 도수 치료가 대표적 사례다. 복지부는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 항목을 퇴출하는 등 비급여 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모든 비급여 진료가 혼합진료 금지 대상은 아니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한정할 것”이라며 “어떤 진료를 제한할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을 통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소생’·‘건보재정 확보’ 칼 빼든 정부
국민건강보험 재정 추이 그래픽. 보건복지부


정부는 이번 종합계획에 담긴 정책에 따라 대안적 지불제도의 비중이 총 요양급여의 5.5% 수준에서 11%로 약 2배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인구 10만명당 치료가능 사망률도 지역 간 격차가 10.6명에서 5.3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2026년 건강보험 당기수지도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8년에는 적자 폭이 1조5836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복지부는 조만간 국회에 종합계획을 보고한 뒤 시행계획을 수립해 정책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다만 수가체계 개선, 혼합진료 금지 등 대부분의 세부 사항은 사회적 합의는 물론 건정심 심의나 법 개정이 필요해 현장 정착까지 적잖은 논란과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박 2차관은 “이번 계획을 통해 꼭 필요한 의료를 튼튼히 보장하고, 합리적으로 가격을 조정해 의료 공급을 정상화하겠다”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포함해 그간의 필수의료 대책이 안정적 재정 지원 하에서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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