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명분 없다” vs “근본 해결책 필요”…의사 집단행동 예고에 의료계 ‘갑론을박’

기사승인 2024-02-15 0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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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명분 없다” vs “근본 해결책 필요”…의사 집단행동 예고에 의료계 ‘갑론을박’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팻말이 놓여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명분이 없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예고한 의사단체를 향해 대통령실, 보건복지부, 국회, 시민사회단체까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집단행동 시 명분, 실리를 챙길 수 없다는 비판 속에서 일부 의사를 비롯해 간호사나 물리치료사 등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자 피해는 불 보듯 뻔하고, 의대 증원과 상관없는 다른 의료계 직역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필수의료 보강을 위해선 열악한 의료 여건 개선 등 본질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의견 역시 적지 않아 의료계 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밥그릇 챙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14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 다른 직역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밥그릇 챙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책임하다”, “어린 아이 떼쓰기 그만하라” 등의 비판이 쏟아진다.

서울 지역 내과의원에서 근무하는 4년차 간호조무사 최보영(34·가명)씨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고 했을 때 의사단체들은 많이 당황했을 것”이라면서도 “단체로 파업에 나서겠다고 위협하는 대응 방식은 정부가 아닌 국민을 위협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지역 재활병원에서 2년째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 송재호(30·가명)씨도 “무책임하다”며 의협을 꼬집었다. 송씨는 “물리치료사들은 얼마 벌지도 못하고 힘들게 일하는데 돈 잘 버는 의사들은 왜 환자를 볼모로 집단행동에 나서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경기 지역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7년차 간호사 신지현(32·가명)씨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2020년 파업 때처럼 간호사들이 고생할 게 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씨는 “간호대생은 매년 몇 백 명씩 늘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해답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의대는 몇 십 년 동안 늘어나지 않았고, 모두가 의료진이 부족한 현실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는 데 열중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심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파업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겠는가”라고 토로했다.


“실리·명분 없다” vs “근본 해결책 필요”…의사 집단행동 예고에 의료계 ‘갑론을박’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박효상 기자


의협은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대정부 투쟁 방향성을 밝히며 세 결집을 본격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겁박 등 앞으로 예상되는 어떠한 역경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며 “정부의 불합리한 의대 정원 증원 추진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의협의 집단행동 방침에 고개를 젓는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 이비인후과의원 원장은 “정부의 의료 정책에 반발해 의사들이 환자 곁을 등지는 상황이 우려스럽다”면서 “파업 예고, 전공의 사직, 의대생 집단 유급 등은 국민들의 불안만 유발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특히 응급실을 지키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자리를 저버리고 파업에 동참한다면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민단체들은 의사단체가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선처 없이 대처해야 한다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며 “의사단체는 명분 없는 불법 파업 논의를 중단하고 환자를 살리는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라”고 전했다.

“근본적 해결책 없으면 집단행동 불씨 되살아나”

소아청소년과 등 소위 필수의료과가 겪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손보지 않고선 의사단체의 집단행동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란 시각도 맞서고 있다. 수도권 빅5병원 심혈관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이서현(28·가명)씨는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무작정 의사를 늘린다면 나중에 남아도는 게 의사, 간호사일 것”이라며 “정부는 의사들이 산부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에 왜 가지 않으려 하는지 현장 의견을 면밀히 살피고, 이들이 처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본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지역 공공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는 임지환(29·가명)씨는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의협 입장은 이해한다고 했다. 임씨는 “의사 수를 확대한다고 해서 정형외과나 피부과, 성형외과 등 소위 인기과에 쏠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늘어난 필수과 의사를 어떻게 운용하고 유지할지 정부의 방안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리·명분 없다” vs “근본 해결책 필요”…의사 집단행동 예고에 의료계 ‘갑론을박’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의사단체의 집단행동 움직임을 두고 의료계 내에서도 평가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전공의들(인턴·레지던트)의 ‘사직 러시’는 계속될 전망이다. 홍재우 대전성모병원 인턴은 지난 13일 유튜브 채널 ‘공공튜브_메디톡’을 통해 “이 작은 행동이 불씨가 됐으면 한다”며 공개적으로 사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의사단체들은 일제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집단행동을 위한 전열을 갖추는 모양새다. 전공의들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12일 임시대의원총회를 개최해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 체제로 돌아섰다. 이필수 회장이 사퇴한 의협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오는 17일 제1차 전체회의를 갖는다. 회의에선 파업 등 향후 투쟁방안과 로드맵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엄정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정부는 의료체계를 정상적으로 운영해 환자 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해 나가겠다”며 “각계의 의견을 경청해 가장 합리적인 정책으로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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