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MRI 병상기준 강화에 ‘대형병원 쏠림’ 우려

정부, 병상 수 기준 강화해 특수의료장비 관리 강화
병상 사고팔기, 처방 남용 등 부작용 방지 취지
의료계·시민단체 “수도권 상급병원으로 환자 몰릴 것”

기사승인 2024-02-18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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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MRI 병상기준 강화에 ‘대형병원 쏠림’ 우려
사진=박선혜 기자


보건당국이 의료 남용이 의심되는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와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 등 특수의료장비에 대한 병상 수 기준을 강화하겠단 의지를 피력한 가운데, 이를 두고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은 CT와 MRI 등 특수의료장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환자들이 합리적 의료서비스를 이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의료기관의 서비스 과잉 공급을 막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CT, MRI 남용 폐해를 낳았던 병상 공동활용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더불어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병상 수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안을 검토한다. 현재 MRI의 경우 시·군 이상 지역에서 200병상 이상을 보유한 의료기관이 운영할 수 있다, CT는 시 지역은 200병상 이상, 군 지역에서는 100병상 이상을 확보한 의료기관에 한해 설치할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 병상 기준에 못 미치는 병의원은 병상 공동활용 제도에 따라 인근 다른 의료기관에서 병상을 빌려 기준을 채울 수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21년 말부터 특수의료장비 공동활용 병상 규정을 개정하려는 의지를 밝혀왔다. 일부 병원에서 병상 기준을 충족하려고 병상당 500만원까지 웃돈을 주는 편법 거래가 등장하는 등 병상 공동활용 제도의 취지가 변질됐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선 병상 공동활용 제도와 관련한 리베이트가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당시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은 “의료장비를 구입하는 병원이 공동활용 동의를 하는 병원에 지급할 금전을 장비 판매업체가 대납하는 형태의 리베이트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병상 수 거래를 알선하는 브로커가 돈을 받은 뒤 병상 확보를 해주지 않아 사기죄로 형사 고소하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말했다. 

MRI, CT 등의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촬영 건수가 급증한 상황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CT는 총 1200만건, MRI는 620만건 이뤄졌다. 특히 MRI는 2018년 10월부터 뇌·뇌혈관 등을 시작으로 건강보험이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되면서 촬영 건수가 2018년 대비 2019년에 127.9%, 2020년에는 134.4% 증가했다. 불필요한 의료비 부담이 커졌다고 복지부는 판단했다. 

◇ “의료 접근성 줄 것…규제 앞서 실태조사 먼저”

복지부의 이번 개정 움직임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정부 계획에 대해 논의를 갖고자 복지부에 두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규제책은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기존 정부의 방침과 어긋나며, 개원가를 옥죄고 의료 접근성을 떨어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중소병원도 200병상을 넘기지 못하는 곳이 대다수이며 지역 병원은 더욱 병상 수를 갖추기 어렵다”면서 “결국 환자는 검사를 위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환자 쏠림이 심화되면 지방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규제 강화에 앞서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특수의료장비 구입 기관이 많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실태조사를 통해 조정하면 된다”며 “‘병상 팔이’ 문제는 잘못된 의료기관을 제재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시민단체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MRI·CT 도입 확대로 인해 그간 처방이 남발된 점도 있지만, 1차 의료기관에서도 검사가 가능해지면서 국민의 의료 접근성이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윤 사무총장은 “정부 계획대로 일정 병상 수 기준으로 특수의료장비 검사가 시행되면 3차 병원 쏠림 현상을 피하긴 힘들 것”이라며 “부작용이 생겼으니 하지 말라는 식의 규제 강화는 문제가 있다. 국민 건강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담당자는 “구체적 병상 기준에 관한 사항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공동활용 제도 폐지를 포함한 시설 기준 강화를 담은 개정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또 “현재 의료계와 개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의료기관 특성에 따른 장비의 의학적 필요성과 기존 설치 기관에 대한 경과 조치, 군 지역에 대한 완화된 기준 적용 등 다양한 방안을 함께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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