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못 봐요?” 전공의 이탈 첫날부터 속 타는 환자들

[르포] 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서울대병원 ‘혼란’
환자들 “파업 장기화되면 병원 옮겨야 하나” 우려 
“사람 살리는 의사가 환자를 봐야지…” 분노도

기사승인 2024-02-20 18:46:38
- + 인쇄
“진료 못 봐요?” 전공의 이탈 첫날부터 속 타는 환자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대거 근무지를 이탈한 20일, 세브란스병원이 평소보다 붐비지 않는 분위기다. 사진=김은빈 기자

전공의들이 집단휴진을 시작한 20일, ‘빅5’로 불리는 서울 주요 대형병원은 대체로 한산했다. 병원에서 전공의 파업에 대비해 수술, 진료, 입원 일정 등을 조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래 진료와 기존 입원 환자들은 아직 파업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전공의의 빈자리는 체감하는 분위기다.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진료를 못 보게 되는 것 아닌지 불안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입원 환자 조모(72·여)씨는 “20여년간 세브란스병원에 다녔는데, 병원이 이렇게 한산한 건 처음 본다”며 “오늘 4개 진료과에서 진료를 봤는데, 평소 봐주던 젊은 의사 선생님들이 없었다. 어디 갔나 물어보니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많은데, 파업이 장기화되면 환자들은 어떻게 하나”라며 “(입원실에서)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마음을 졸였다. 

권모(73·남)씨는 “수술 이후 간단한 검진을 받으러 왔는데, 평소보다 1~2시간은 더 걸린 것 같다. 병원이 평소보다 붐비지 않는 것 같은데, 손이 비어서 그런지 오래 걸렸다”면서 “이런 대형병원에는 중증 환자가 많아 가뜩이나 의사가 부족한 상황인데, 사직서를 내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진료 못 봐요?” 전공의 이탈 첫날부터 속 타는 환자들
20일 오후 서울성모병원의 외과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 사진=신대현 기자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안과 진료를 위해 방문한 이모(36·여)씨는 “오늘은 진료를 봤지만, 파업이 장기화 되면 앞으로 지장이 생길 것 같다”면서 “병원을 옮겨야 하나 걱정돼 진료기록을 떼가려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1살 아이의 아빠 이모(34·남)씨는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진료를 못 받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다”며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은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가 가장 많은 곳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근무지를 떠난 전공의 1630명 중에선 세브란스병원, 성모병원 소속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세브란스병원은 진료실 주변 안내문을 통해 “현재 의료원 전공의 사직에 따라 진료 지연 및 많은 혼선이 예상된다. 특수 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고 공지했다. 특히 안과는 외래 진료도 차질을 빚었다. 안과 접수대 앞에는 ‘특수 처치 혹은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안내문이 올려져있다. 또 복지부가 운영하는 응급의료정보제공 앱에는 오후 6시 기준 ‘성인 응급실 성형외과 단순봉합 진료 불가능’이라고 안내됐다.

서울성모병원도 환자들의 응급 여부, 중증도에 따라 20~30%의 수술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20일 오후 4시 기준 외과 진료가 35분간 지연되기도 했다.

“진료 못 봐요?” 전공의 이탈 첫날부터 속 타는 환자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의사들 밥그릇 지키려고…” 환자들 분통

환자들은 전공의 이탈로 인해 의료 현장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수술 후 정기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밝힌 박모(68·여)씨는 “의사들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환자들을 버리는 건 잘못됐다”면서 “환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아내를 병간호하고 있다고 밝힌 박모(79·남)씨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달은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찍으러 왔다고 한 김모(59·남)씨도 “의사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면서 “사람을 살리는 게 의사의 할 일인데 환자를 보는 게 맞지 않냐”고 반문했다. 

정부와 의사들의 ‘강대강’ 대치에 환자들만 피해를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증원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데, 결국 피해는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며 “환자들을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에 따르면 전공의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19일 오후 11시 기준 6415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로 인해 피해신고도 속출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수술 취소 25건, 진료 예약 취소 4건, 진료 거절 3건, 입원 지연 2건 등 총 34건이 발생했다. 

김은빈, 신대현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진료 못 봐요?” 전공의 이탈 첫날부터 속 타는 환자들
“진료 못 봐요?” 전공의 이탈 첫날부터 속 타는 환자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