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의 반복된 죽음, 달라질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20-05-29 06:22:00
- + 인쇄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고(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 전국아파트 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등은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근로복지공단 북부지사 앞에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고 최씨의 죽음이 산업재해(산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인권실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이진아 노무사는 “업무 관련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자해 등은 산재로 인정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며 “고 최씨는 4차례의 폭행과 수차례 폭언에 시달렸다. 너무나 명확한 산재”라고 강조했다. 

고 최씨의 형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앞으로 제2의 최희석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법을 존중해서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슴으로 약자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고 최씨가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 최씨는 입주민 심모씨와 지난달 21일 주차 문제로 다퉜다. 이후 심씨는 고 최씨에게 지속해서 폭언과 폭행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보복폭행 등 혐의를 받는 심씨는 지난 22일 구속됐다. 

입주민의 갑질에 의해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 서울 강남구 신현대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고(故) 이만수씨가 입주민의 폭언 및 모독을 견디다 못해 분신을 기도했다. 전신 화상을 입은 고 이씨는 투병 끝에 사망했다. 입주민은 5층에서 고 이씨 등 경비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던지며 “이거나 먹으라”라고 하는 등 모욕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이씨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됐다. 경비원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첫 사례다.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하거나 다치는 일도 잦다.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 6월말까지 5년간 공공임대주택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에게 입주민이 가한 폭언·폭행은 2996건에 달했다. 민간 아파트 등은 포함되지 않은 통계다. 지난 2018년에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취한 입주민으로부터 폭행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던 70대 경비원이 숨졌다. 같은 해 대구에서는 아파트 입주민 대표가 근무자용 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휴게 시간에 쉬고 있는 경비원을 폭행했다. 지난 2016년 광주에서는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고 담뱃불로 얼굴을 지져 논란이 됐다.    

아파트 경비원의 반복된 죽음, 달라질 수 있을까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끊을 길은 없을까. 현재 시행 중인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법안을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아파트 입주민은 ‘사용자’에 해당되지 않아 법 적용이 어렵다. 대다수의 경비원은 아파트 입주민이 아닌 용역업체에 고용된 형태다. 근로기준법을 확대해 ‘사각지대’에 있는 경비원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비원은 ‘감시·단속’ 근로를 한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을 거의 적용받지 못한다. 그러나 경비원은 아파트 내에서 분리수거·청소·주차관리 등의 업무도 병행한다. 실상에 맞게 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경비원 노동조합 설립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경비원의 목소리를 모아 근로환경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비원은 결속이 어려운 조직으로 꼽힌다. 같은 일터에서도 24시간 맞교대 등으로 인해 의견을 나누기 힘들다. 1년 단위 계약으로 인해 개인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구심점이 없으니 정부, 이해관계자 등과 ‘사회적 대화’도 어렵다.

다만 최근에는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 등을 통해 경비원 지역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노총 일반노조에도 200여명의 경비원이 가입돼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고 최씨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모아 경비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모으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는 입법, 노조 조직과 함께 아파트 입주민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오표 서울 성북구 노동권익센터장은 “다수의 아파트에서는 최저임금이 오르자 최근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늘려 임금 인상을 막았다”면서 “휴게시간에 대다수의 경비원은 입주민의 눈치를 보며 쉬지 못한다”고 말했다.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