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몰라”…심리적 봉쇄 시작, 지역 경제 ‘꽁꽁’

입력 2020-02-21 13: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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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몰라”…심리적 봉쇄 시작, 지역 경제 ‘꽁꽁’

[대구=쿠키뉴스] 최재용.최태욱 기자 =  “마트에 두부, 라면, 과일 다 동난 거 보고 무서웠어요.”

직장인 박모(39‧여)씨는 저녁거리를 사기위해 집 근처 마트에 들렸다가 생필품이 동난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수북이 쌓여있던 채소와 과일은 물론, 쌀과 라면, 과자가 코너도 텅텅 비어 있었다.

박씨는 “원래 오늘 아들이 졸업하는 날이라 외식을 하려고 했는데 졸업식도 취소되고 밖에서 뭘 먹는다는 게 무서워서 집에서 맛있는 걸 해먹기로 했다”면서 “잠깐 동네 마트에 나왔는데, 생필품 동난거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대구는 지역사회에 전파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심리적 봉쇄’가 시작되고 있다. 시민들은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현관문을 굳게 닫고 칩거에 들어갔다. 경제활동이 꽁꽁 얼어버리자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시름을 넘어 생존공포를 느끼고 있다.

21일 오전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전통시장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대구 북구 ‘칠곡’의 대표시장인 관음동 금요시장은 사람을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한산했다. 시장을 나온 사람들도 서둘러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고 이내 자리를 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챙겨보던 한 상인은 “눈뜨면 수십명의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걸렸다고 하니 어디 무서워서 살겠냐”면서 “장사가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이러다 시장에서도 감염자가 나올까봐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시장 인근 식당가는 썰렁함을 넘어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아무리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건 처음이다”며 “며칠안에 이 사태가 끝난다면 어떻게든 견뎌보겠는데, 이제 시작이라고 하니 막막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정말 대책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주말뿐 아니라 방학기간이라 사람이 북적이던 키즈카페도 한산하긴 마찬가지다. 키즈카페를 운영하는 박모(45)씨는 “여기 월세가 한달에 300인데 월세는 고사하고 알바생 월급도 챙겨주기 힘들게 생겼다”면서 “알바생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집에서 쉬라고 할 예정인데 입이 안떨어진다”고 말했다.

미용실과 피부관리실, 네일숍 등 예약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생존 위기까지 느끼고 있었다. 네일숍을 운영하는 이모(33‧여)씨는 “우리는 70~80%가 예약손님인데 지금 예약이 모두 취소된 상태”라며 “작년에 가게 오픈하고 겨우 자리 잡아가는데 코로나19가 터져서 이 난리다. 정말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어 “가게에 나온다고 안 올 사람이 오는 것도 아니고, 내일부터는 당분간 가게를 쉴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같은 건물에 있는 꽃시장도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다. 졸업식과 입학식 등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대목을 노리던 상인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

꽃가게를 운영하는 최은상(43)씨는 “지난 19일부터 동네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이 졸업식을 해서 꽃을 많이 때왔는데 줄줄이 취소가 돼 완전히 망했다”며 “오늘은 새벽 5시부터 나와 있었지만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취소뿐이다”고 말했다.

시민 불안감이 확산함에 따라 대구시립도서관 등 지역 대부분 도서관들이 다음달 4일까지 전면 휴관에 들어갔다.

책을 반납하기 위해 북구 구수산도서관을 찾은 김모(40)씨는 “19일까지만 해도 책을 반납하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문이 닫혀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코로나19가 심각한건 알고 있었지만 공공기관까지 문을 닫는걸 보니 도시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다”고 했다.

마스크는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품이 됐다. 동네 마트와 약국에는 마스크가 품절사태가 빚어졌다. 온라인 중고거래 장터인 ‘당근’과 ‘중고나라’ 등에서는 판매하겠다는 글보다 마스크를 사겠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한 지역 누리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길을 가는데 아직도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봤는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며 “마스크는 나를 위해서 써야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도 꼭 착용해 달라”는 글을 올려 많은 누리꾼들의 ‘좋아요’ 받았다.

코로나19가 공기 중으로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대중교통을 이용객들도 크게 줄었다.

택시 기사 강모(66)씨는 “지난 19일부터 도로에 차가 별로 없고, 오늘도 출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교통량이 줄었다”고 말했고, 대구도시철도 중앙로역 관계자는 “평소보다 지하철 이용객이 절반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시민 여러분께 지금까지보다 한 단계 높은 행동요령을 요청드린다”며 “오늘부터 외출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gd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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