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호의 경제톡톡] 미니멀 라이프로 생각해 보는 ‘비움의 경제학’

금진호(목원대학교 겸임교수 / 한국연금개발원 연구위원)

입력 2020-10-05 14: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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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호의 경제톡톡] 미니멀 라이프로 생각해 보는 ‘비움의 경제학’
▲ 금진호 연구위원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요즘 참 많이 이야기되는 단어다. 미니멀 라이프는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말하는데, 오죽하면 유튜브나 방송 프로그램에도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인기를 끄는 방송들이 많다. 

예능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는 연예인들의 집을 보여주고 있다. 럭셔리한 집들보단 다소 정리가 안 된 집들이다. ‘신박’이란 생각지 못한 새롭다는 뜻과 신애라와 박나래의 성을 따서 단어를 만들어 낸 듯하다. 처음에 유투브로 신애라의 집을 보여주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복잡함을 싫어하는 건지 넓어 보이는 집인데도 아주 심플하다. 특히 신애라 집의 냉장고는 놀라운 수준이다. 거의 1인 가구 냉장고 수준이다. 나는 신애라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첫아들을 낳고 두 딸을 입양하여 가슴으로 낳았다. 나는 그런 연예인을 본 적도 없기에 쇼킹했고 그녀의 결단이 신기해 보였다. 남편과 함께 컴패션 활동을 하며 세계 극빈 국가의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하며 양육한다. 지금은 국내 위탁가정 활성화를 위한 활동도 시작한다고 한다.

집을 보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보인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맘에 어떤 짐이 있는지 어떤 것에 집착하고 마음을 기대고 있는지가 보인다. 화려해 보이기만 했던 그가 그의 집을 보여주는 순간 ‘아우’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신박한 정리'는 담당 PD에게 신애라의 아이디어에서 제안해 시작됐다고 한다. 정리에 대한 남다른 신념이 있었던 신애라다. 온 집안에 가득한 물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거실과 베란다, 다용도실에도 잡동사니가 가득하다. 일 년에 한 번 꺼내 보지도 않을 물건이 집안 공간만 가득 차지하고 있다. 비싼 아파트를 사서, 창고로 쓰고 있는 셈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뭘 저장할 것이 별로 없었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드니, 소중히 간직할 만한 것은 문갑 하나면 충분했다. 게다가 패물이나 도자기를 제외하면 모두 유기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의 힘으로 썩어간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었고, 살기 바빠서 현재에 더 충실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뭐든 안으로 들어와 쌓기만 하고, 없애는 것이 많지 않다. 이미 있던 물건을 찾지 못하거나 기억을 못해 다시 사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중년은 원래 더 새로운 것을 얻기보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유지하는데 주력하는 나이다.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집에 있는 책이나 가재도구를 보면 하나하나 추억이 깃들어 있다. 이 옷은 처음으로 해외여행 갈 때 입었던 옷, 저 핸드폰은 생애 처음 장만한 핸드폰, 그 책은 대학교 교정에서 읽었던… 이런 식으로 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추억과 연결된 물건을 버리는 것은 마치 과거를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 영 내키지 않는다. 

과거에는 서재 한 칸을 가득 채운 사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이 금세 온 세계의 언어를 찾아주고, 직접 해석해주는 세상이다. 특별한 사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종이로 된 영한사전이나 국어사전을 찾을 일은 좀처럼 없다. 그렇다고 소장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5~60년대 사전이라면 골동품이라도 되겠지만, 버리지 못한다. 여기저기 줄 쳐진 형광펜이 마치 즐거운 학창시절을 증명하는 것 같아 도무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추억이 있는 물건이나 관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버림받을까 불안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더는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을 끝까지 붙잡고 집착하는 것이다. 버리거나, 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조금은 아깝고, 조금은 미안하다. 하지만 더 소중한 대상과 가까워지고,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더 귀한 이에게 내어주기 위해서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집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면 신나고 즐거울 것 같은 데 왜 출연자들은 감동하고 울까! '신박한 정리' 속 정리는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너 힘들었지"라는 감성의 공감을 더해주곤 했다. 신애라와 박나래의 살아온 흔적에 대한 공감과 따뜻한 멘트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하나.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만 남기자. 아직 이루지 못한 중년의 꿈도 좋다.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오랜 꿈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장'하고 '쌓아'두자. 그렇지 않다면 눈 딱 감고 버려도 좋다. 버려야만 가질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집콕 시대다. 아침밥도 못 먹고 나오기 바빴던 집이 아니라 이젠 우리가 오래 머물고 가족이 함께 있는 집이다. 이럴 때 짐안을 정리하며 비움을 실천하고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기억의 조각들도 정리해 보자. 비우는 것이 행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박한 정리' 프로그램은 참 건강한 예능프로그램이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