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밤

박용준(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 숲 운영위원)

입력 2020-10-09 20:25:03
- + 인쇄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밤
▲박용준 원장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유럽, 미국 등의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밤은 오래전부터 구황식량(救荒食糧) 및 관혼상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한 송이에 세 개의 밤알이 들어있는 밤은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상징한다. 그래서 폐백 때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던지는 밤은 ‘자식을 정승처럼 훌륭하게 키우라는 의미’이다. 

낙랑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밤나무가 자생한 것은 20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밤은 오래전부터 중국에도 널리 알려져 왔다. 『삼국지(三國志)(297년)』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 마한편(馬韓篇)이나, 당나라 위징(魏徵)의 『수서(隨書)』에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밤의 크기가 배(李)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자라던 배는 야생의 산돌배로 지금의 커다란 개량 품종의 배와는 크기에 차이가 있다. 그런 기준으로 가늠해보면 3cm 이상의 비교적 큰 알밤이 그 당시에도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492년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는 밤나무 목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생산할 목적으로 ‘나라에서 밤나무를 보호림(栗木封山)으로 지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산림경제’에는 ‘밤나무의 목재는 오래 가고 성질도 좋으므로 귀중한 나무’라 하여 식재가 장려된 바 있다.  

가을이 제철인 밤은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찌거나 구워서 먹어도 맛있다. 갈비찜, 약밥 등의 다양한 요리에도 사용되는 밤은 남녀노소가 즐기는 대표적인 간식으로 양갱(羊羹)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동의보감』에는 ‘밤은 기를 북돋아 주고, 위와 장을 든든하게 해주며, 배고프지 않게 해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東醫寶鑑』 栗子 性溫味鹹無毒 益氣厚腸胃 補腎氣 令人耐飢  

또한 근골을 강하게 하고 근육과 뼈의 상처를 치료하며, 비장이 약해서 발생하는 설사를 다스리며, 부은 것을 치료하는 효능을 밤에서 찾을 수 있다. 

補腎强筋 筋骨折傷 脾虛泄瀉 活血消腫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밤
밤은 영양소를 고루 지닌 과일이다. 100g에 약 160kcal 정도를 지녔으며,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비타민 A, 비타민 B1(티아민), B2(리보플라빈), 비타민 C 및 칼슘, 칼륨 같은 미네랄까지 풍부하다. 이렇게 다양한 균형 잡힌 영양성분들은 아이들의 성장발육에 도움이 되며, 어른들의 건강관리에도 이로운 점이 많다.

피로해소 비타민이라고도 불리는 비타민 B1의 함량이 쌀에 비해 4배나 많다.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 C와 성장에 관여하는 비타민 D도 풍부하다. 소화도 잘 되는 음식이어서 아기들의 이유식은 물론이고 성장기 아이들의 간식, 노년층 및 산모, 그리고 병후 회복 환자의 영양식으로도 좋다. 

풍부한 비타민C와 강력한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 및 베타카로틴 성분은 피로 해소 및 피부미용에 좋으며, 타닌 성분은 설사나 배탈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급성 복통으로 인한 설사에 구운밤을 먹여 설사를 다스리고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사용해왔다. 배탈과 설사가 심할 때 익힌 밤을 먹으면 효험이 있다. 소화가 잘 안되고 묽은 변을 자주 보는 경우에도 밤을 먹으면 도움이 된다.  

숙취해소에도 밤이 좋은데, 이때는 반드시 생밤으로 먹어야 더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생밤에 풍부한 비타민 C가 숙취를 유발하는 알코올 분해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의 생성을 억제, 숙취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 바다와 섬 지역 여행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여객선이 오가는 항구 매점에서 ‘멀미에 좋은 밤’이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생밤이나 군밤을 파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배 멀미는 인체의 평형감각 이상으로 유발되는데 특히 배를 타본 경험이 적은 여행객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또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멀미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긴 여행 중 딱딱하고 오래 씹을 수 있는 음식인 껌, 오징어, 생밤 등을 먹으면 머리와 안면부의 근육 운동 효과로 머리의 혈액순환이 활발해져서 피로감과 스트레스 등 정신적인 요인을 한결 가볍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생밤에 함유된 레놀레산 성분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탁월해 여행으로 지치고 긴장한 혈관을 이완시켜주는데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한편, 밤은 탄수화물 성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는 좋지 않다는 견해도 있는데, 밤의 혈당지수는 60으로 높지 않은 수준이므로 적당한 양의 밤을 간식으로 섭취하는 것은 다이어트에 큰 해가 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밤 고르기와 보관 요령을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제공한 자료를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껍질에 구멍이 없이 깨끗하고 윤기가 나며, 손으로 들어봤을 때 단단하고 묵직하며, 물에 담갔을 때 뜨지 않고 가라앉는 밤을 골라서, 보관할 때는 구멍을 뚫은 비닐에 담아 냉장실에 보관한다. 

이렇게 건강에 좋고, 맛과 영양이 풍부한 밤을 간식으로 가족들과 나눠보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이는 깊어가는 가을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