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이어지는가 [‘승리호’ 봤더니]

기사승인 2021-02-20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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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이어지는가 [‘승리호’ 봤더니]
사진=승리호 선원들. '승리호' 스틸컷

* 기사에 영화 ‘승리호’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돼 있습니다.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왠지 나만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영화 ‘승리호’에서 업동이(유해진)의 대사는 유머 코드로 활용된다. 다른 사람이 노는 동안 혼자 열심히 일하는 선원이 느끼는 천진한 의문은 매일 같이 노동을 하는 현대인에게 묘한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블랙코미디엔 어느 정도의 비웃음이 섞여있다. 영화를 보는 누구도 업동이처럼 혼자만 열심히 일하는 인물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엄밀히 ‘승리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뭉친 네 명의 용사가 우주에서 싸우는 영화로 보기 어렵다. 처음부터 끝까지 육체 노동에 임하는 굉장히 피곤한 영화에 가깝다.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우주쓰레기를 청소하러 떠나는 장면으로 끝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승리호 선원들의 가장 큰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우주선 운영을 위한 대출을 갚는 것이 공동의 목표고, 개인적인 이유로도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꽃님이 에피소드도 그의 몸값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승리호 선원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는 돈이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열심히 일해도 돈이 모이지 않는다. 돈이 모이기는커녕 점점 빚만 늘어간다. 신발이 없어 비닐봉지를 신고, 옷도 늘 똑같다. 71년 후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UTS가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에선 저급 노동과 고급 노동의 구분이 확실해 보인다. 저급 노동자는 일을 할수록 빚더미에 빠지고, 고급 노동자는 UTS라는 꿈같은 곳에서 안락한 삶을 즐긴다. 영화 초반부에 한 기자는 UTS 설립자인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에게 우주청소부들의 노동 가치를 언급한다. 그는 이들을 불쌍하고 힘든 사람들로 묘사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장면들에서 우주청소부들은 오히려 굉장히 열정적이고 활발하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같은 노동을 두고 생기는 시선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마치 ‘승리호’의 세계에서 노동의 가치가 다르게 책정된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다.

'노동'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이어지는가 [‘승리호’ 봤더니]
사진=공장(우주쓰레기 하치 위성)에서 일하는 노동자. '승리호' 스틸컷

영화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설리반은 일을 굉장히 잘하는 인물이다. UTS를 만들어 지구인을 이주시키는 사업에 성공해 큰돈을 벌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요소는 모조리 제거했다. 자신도 테러 위협에서도 살아남았다. 영화에서 그의 가족과 일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회사에서 일어난 부정이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자신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정말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가 “내가 옳다고 믿었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드러낸다.

‘노동’이 영화 속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에 관한 키워드라면, 여러 번 언급되는 표현 중 하나인 ‘좋은 사람’은 기존 질서에 반발을 일으키는 키워드다.(‘좋은 사람’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순이의 편지글에서 직접적으로 명시되기도 한다) 노동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좋은 사람이 등장하는 건 엉뚱하다. 성질이 다르고 논의의 기반이 다르다. 일을 잘(열심히)하는 사람이 반드시 선할 수 없고, 선한 사람이 모두 일을 잘(열심히)하는 것도 아니다.

선(善)이 주요 이야기 소재로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장선장이 돈을 버리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누구보다 노동의 가치로서 물질적 결과를 원하던 이들이 눈앞의 돈을 우주에 버린다. 장선장의 말대로 그건 정의롭지 못한 돈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체 정의와 선은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설리반이 무릎을 꿇게 하고 싶은 승리호 선원은 태호다. 단순히 과거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설리반과 태호는 영화에서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존재로 등장한다. 태호는 설리반에게 아들 같은 존재다. 태호가 꽃님이를 직접 선택해 딸로 키웠듯, 설리반이 유일하게 직접 선택한 입양 지니어스가 태호다. 설리반이 태호를 내친 건, 단순히 태호가 변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굳이 내쫓지 않아도 다른 이용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설리반이 견딜 수 없었던 건 아마 태호의 선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설리반은 자신과 다르다고 느낀 태호를 눈앞에 쓰러뜨리고 자신과 똑같은 선하지 못한 사람인 걸 증명하길 원했고, 그 모습을 짓밟고 싶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가장 일을 잘하고, 가장 열심히 자신의 목표를 좇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노동'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이어지는가 [‘승리호’ 봤더니]
사진=홀로 승리호를 쫓는 설리반. '승리호' 스틸컷

‘승리호’에서 좋은 사람의 의미는 영화 속 인물들보다 영화 밖 관객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관객들은 승리호 선원들이 좋은 사람이길 원한다. 돈만 좇던 선원들이 꽃님이와 지내며 조금씩 좋은 사람으로 변해가는 성장에 재미를 느끼고, 내면의 좋은 모습을 더 드러내 모두가 알게 하길 원한다. 설리반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알게 된 후엔 그것이 만천하에 드러나 파멸에 이르길 원한다. 노동이 영화 속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면, 좋은 사람은 영화 밖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동력이다. 승리호가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동료 우주청소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승리호를 응원하는 관객들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승리호’가 제작될 당시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국에 공개될 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의 전유물이었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한국으로 끌어오려면 몇가지 장치가 필요했다. 각국의 언어로 말해도 실시간으로 통역되는 통역기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또 한국인이 주인공이어도 어색하지 않을 주제 의식으로 좋은 사람이 사용됐다. 선악은 만국 공통어처럼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선을 강조할수록 이야기는 유치해지지만, 동시에 설득력과 흡인력을 얻는다. ‘승리호’는 현실적인 노동으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선으로 승부를 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승리호’ 선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승리호의 외관과 복장, 태호의 신발이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그대로다. 이들이 노동자로서 갖는 위치가 바뀌었는지는 그려지지 않는다. 정의로운 일의 대가로 ‘특별 지원금’이 주어졌다는 사실에서 지구를 구한 일이 그저 돌발적인 사건처럼 받아들여졌다는 걸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꽃님이를 어느 학원에 보낼지 심각하게 의논하고, 선외에서 릴케의 시집을 읽는 업동이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지원금으로 거액의 대출을 갚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등장한 500달러짜리 우주 쓰레기를 신나게 청소하러 갈 수 있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열악한 상황에서 열심히 ‘노동’에 임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승리호’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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