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터널도 끝나겠죠?"...놀이터 되찾은 인디 개발자

기사승인 2021-11-29 06: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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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스타 2021이 열린 부산 벡스코.   사진=임형택 기자

“전반기에 플레이엑스포 참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지면서, 행사가 취소됐어요. 금전적 손해도 보상받지 못했죠.”

지난 7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의 확산으로 각종 인디게임 행사가 취소되던 시기를 떠올린 제정신스튜디오 정재현 대표의 표정에는 허탈함이 묻어났다. 대중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피드백을 받을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게임산업은 대표적인 코로나 수혜 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비대면 업무 적용이 비교적 수월했고, 게임을 찾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디게임을 개발하는 이들의 사정은 달랐다. 개발 단계부터 애로사항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개발자들은 디스코드, 줌 등을 이용한 비대면 소통에 의존해야 했다.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사진=쿠키뉴스 DB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는 “대략 4개월 동안 사무실 대신 재택에서 업무를 진행했어요. 물론 저희는 어느정도 체계가 잡혀있고, 신작도 대략적으로 완성된 상태였지만, 아주 초기 개발단계에 놓여있거나 소규모로 운영되는 경우에는 비대면 업무에 어려움을 느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인디게임 개발팀은 3~5명으로 이뤄져있다. 7명 이상의 팀은 비교적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인디개발팀은 기획·프로그래밍·아트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인원수가 적기에 업무 분담이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개발자는 “예를 들어 사무실에 함께 모여서 일할 때는 ‘지금 그래픽 아트 리소스가 부족한데 이것 먼저 찾아보고 일하자’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소소한 업무 때문에 회의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비대면 업무의 연속으로 발생한 헤프닝도 있었다. 한 인디게임사 대표는 "아트 담당 직원을 뽑았는데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디스코드로 면접을 보고 포트폴리오를 받았다"면서 "몇개월 가량 작업을 진행했는데 아직도 그 분 얼굴을 모르고 있다"고 웃지 못할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 "그나마 같이 일하시는 분과 코드가 맞아서 망정이지, 만약 개발 지향성이 달랐다면 작업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GIGDC 2021 시상식.   사진=임형택 기자

글로벌인디게임개발경진대회(GIGDC 2021)에 입상한 한 개발자도 “특히 저희 팀은 따로 사업자 등록이나 법인을 낸 것이 아니었기에 사실상 제작 동아리에 가까운 형태였죠. 직장인들이야 필요한 사유가 있으면 함께 일할 수 있다지만, 문제는 저희는 그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았던 것이죠. 사회적 거리두기로 5인 이상 집합금지가 걸렸을 때는 조금 허탈했어요. 출시를 2달 정도 남겨둔 상황이라면 다 같이 모여 밤을 새면서라도 개발을 해야 하는데, 그게 완전히 막힌 거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개발자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대면으로 소통하고, 각종 회의 도구로 작업물을 주고받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 기간 동안 제작물을 보여주고 평가받을 기회, 장소, 환경이 깡그리 사라졌었다는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 지스타.   사진=강한결 기자

코로나의 여파를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은 각종 행사와 전시회였다. 매년 상반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플레이엑스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2년 동안 오프라인 전시회가 취소됐다. 레이엑스포는 지스타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개최되는 게임쇼 중 가장 큰 행사다. 지스타 역시 지난해 사상최초로 온라인 개최를 결정했다.

물론 구글플레이 인디게임 페스티벌, 방구석 인디게임쇼 등 다양한 행사가 온라인으로 개최됐지만 오프라인의 파급력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대체적으로 많은 개발자들은 온라인 행사의 경우 피드백을 듣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GIGDC 2021 제작부문 일반부 은상을 수상한 MMW의 박지혁 팀장은 “저희 게임인 ‘캐치 마이 컬러’ 역시 이용자 테스트를 앞두고 있는데 온라인으로 하려다 보니 막막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앞서 진행한 1차 테스트는 가족과 지인 위주로 구글 설문조사를 돌려 그나마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지만,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2차 테스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는 DC인사이드의 인디게임 갤러리, 인디게임 카페, 인스타그램 계정 등 다양한 루트를 생각중인데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 했어요”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BIC 쇼케이스 X 지스타 2021’ 전시관.   사진=임형택 기자

위드 코로나 이후 유관중으로 진행되는 오프라인 행사가 조금씩 늘고 있는 점은 위안이다.

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 진행된 지스타 2021에는 총 2만8000여명의 관객이 방문했다. 벡스코 제1전시장 BTC관에는 ‘BIC 쇼케이스 X 지스타 2021’ 전시관이 마련됐다. 해당 전시에는 총 65종의 인디게임을 선보였다.‘BIC 2021 어워드’ 10개 수상작과 ‘BIC 게임잼’ 3개 수상작을 포함한 30종의 게임이 전시에 참여했으며, 지스타 사무국을 통해 접수된 게임 30종, 게임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제작한 게임 5종이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오랜만에 행사에 방문한 관객들도 여러 가지 게임을 시연하면서 즐거워했다. 독특한 컨셉으로 이목을 끌었던 '나 내려요'의 부스에는 관람객들이 남긴 오리 그림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이 게임은 사람이 붐비는 서울 ‘지옥철’을 체험해보라는 의미로 제작된 게임이다. 부스에서 만난 대학생 윤 모(25)씨는 “게임이 너무 재미있다”며 “오프라인 행사가 아니었으면, 만나기 힘들었을 작품을 다수 플레이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모처럼 오프라인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개발자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GIGDC 2021 대학부 은상을 수상한 마일스톤 게임즈는 ‘컬러 림’을 관람객에게 선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송혜은 개발자는 관객들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마일스톤 게임즈 송혜은 개발자.   사진=임형택 기자

그는 “오랜만에 이용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전시회를 하게 돼 기쁘네요. 특히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들고, 난이도는 저런 식으로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부분이 저희에게는 매우 큰 자산이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지스타 기간에 만난 스튜디오 휠의 김상일 대표는 “사실 열리는 행사 자체가 줄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다른 의미에서 체감이 큰 것 같아요. BIC에 출품한 참가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온라인에 아무리 업로드를 해도 막상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인디개발자들에게는 피드백과 이용자의 플레이를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해요. 일단 어디에서 막히는 부분이 생기는지, 불합리하게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레벨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거든요. 개발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당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온라인으로 댓글을 남긴다고는 하지만 반응 자체도 적고, 내용의 깊이도 따라갈 수가 없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했다.

벡스코 인근 카페에서 만난 스튜디오 휠 김상일 대표.   사진=임형택 기자

김 대표는 “결정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서 게임을 제작한다 해도, 생각보다 별로이거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접는 경우가 많아요. 개발자 입장에서는 후회가 남기 마련이죠. 그런데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해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얻으면 이런 부분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어요. 동기부여도 될 수 있습니다”라며 오프라인 행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번달부터 김 대표는 재택근무를 마치고 부산 문화콘텐츠콤플렉스에 위치한 사무실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사무실로 돌아오니 무언가 더 활기가 생긴 느낌이에요. 보니까 저희말고 다른 개발팀은 벌써 다 돌아와 계시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저희가 마지막으로 복귀한 셈이죠. 이따가 모처럼 오프라인 지스타가 열렸으니 행사장 구경을 해보려고요. 인디게임 부스에는 어떤 작품이 나왔나 한 번 살펴봐야죠”라며 싱긋 웃었다.

블랙앵커 스튜디오의 '비포더던'을 체험하고 있는 관람객.   사진=임형택 기자

19일 오후 5시께 조금씩 부스를 정리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정재현 대표는 “사실 저는 코로나 시국 이후에 본격적으로 개발에 뛰어들었는데요.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확신이 안 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저희 게임은 유료게임이다 보니 직접 설명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메트로블라썸 정말 재밌게 했다’는 팬들도 오셔서 힘이 났습니다. 이용자 분들의 피드백 이후 새로운 패치 방식에 대해서도 영감을 받았고요.”

잠시 말을 멈춘 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뿌듯했던 것은 ‘재밌게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만들어주세요’라고 격려해주신 팬들의 응원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에요. 코로나 시기 저는 혼자 동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렇지만 이번에 오프라인 행사에서 깨달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인디 게임을 사랑하고 응원해주시고 계셨다는 것을요. 앞으로는 온라인도 좋지만, 오프라인 행사가 허용된 만큼 더 많은 공간에서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놀이터를 잃고 2년 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인디게임 개발자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온 이들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강한결 기자 sh04kh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