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영화 천국에 산다 [쿠키 칼럼]

살인적인 일본의 교통비
전력 민영화 대가도 혹독
이동빈곤 일본 닮을텐가

기사승인 2023-02-26 06: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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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영화 천국에 산다 [쿠키 칼럼]
일본의 고속도로는 대부분 민영이고 통행료가 비싼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피디아 자료


출구가 부족한 일본의 고속도로


며칠 전 나리타공항에 다녀왔다. 집에서 공항까지 대략 60km인데 고속도로를 탔다. 편도 통행료는 3,570엔(약 3만4천원)이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갈 때는 엄두가 나질 않아 일반도로로 3시간 동안 운전해 갔다.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약 300km를 가려면 편도 7320엔(약 7만1천원)을 낸다. 500km 정도 거리의 오사카까지는 1만2000엔(약 11만2천원) 넘게 지불해야 한다. 서울의 내부순환로 같은 도쿄 시내 유료도로 통행료도 5km 거리가 600~700엔 정도다. 

미쳐버린 일본의 고속도로 통행료 덕택에 나는 장거리 운전이 아닌 장시간 운전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가끔씩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 때마다 통행료에 놀란다. 빨리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고 싶은 조바심 때문인지 출구도 적은 것 같다. 순전히 내 기분 탓일까?

도로보다 한참 먼저 민영화된 철도도 차비가 부담스럽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신칸센을 타면 편도만 13000엔(약 12만5천원)이 넘는다. 왕복이면 한국 돈으로 25만원정도 이상 내야 한다. 여러 번 기차를 갈아 타며 이동에만 15시간 이상을 허비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일반 완행 기차로도 갈 수는 있다. 이 경우 요금은 대략 9000엔. 완행도 저렴하지도 않다.

나는 민영화 천국에 산다 [쿠키 칼럼]
필자가 몸소 직접 찍은 도쿄 시내의 유료도로 사진.


이렇게 비싼 고속도로이지만 무료화 계획이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일본의 고속도로. 놀랍게도 무료 개방된다. 언젠가는 말이다. 2000년 개통된 민자 도로의 경우 요금징수를 최대 50년으로 정해 건설 비용을 충당하고 2050년이후에는 무료 개방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원 부족을 이유로 어느새 2065년이후로 15년을 미루더니 급기야 지난달 국토교통성은 노후화된 도로정비를 구실로 50년 더 연장해 2115년이후에 무료화 하겠다는 더욱 놀라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발표했다.

방송에 나와 정부를 열심히 변명해주는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본은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고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도로 건설과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자연 재해와 터널이 일본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납득하기 힘들다.

어쨌든 올해 태어난 아기도 무료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빨라야 90살이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때 쯤 자동차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이만하면 사실 고속도로 무료화는 사기에 가깝다.


거의 모든 공공부문이 민영화되어 있는 나라

한국보다 더 먼저 더 많은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거나 할 예정인 일본에서 관련 뉴스를 볼때마다 등장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발견했다.
 
재정 적자 나 민간의 노하우로 인한 비용 절감 그리고 규제가 완화되어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 더 좋은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결국 요금이 인하되어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들이다. 한국이라면 여기에 방만한 경영이나 노조가 문제라는 키워드가 더 추가되려나?

재원이 부족해서 민영화를 한다는데 서비스요금이 오르는 건 당연하다. 상한선을 두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비싼 이유다.
 
공공서비스 정상화를 왜 공기업은 못하고 민간기업에서는 가능한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서비스를 민영화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는 일본을 보면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으로 이미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도쿄전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016년부터 시작된 전력 시장 자유화는 언뜻 소비자에게 유리해 보이는 시장연동형 요금을 도입했다. 실제로는 가격 인상 상한선은 없어도 하한은 있는 요금제로 SNS상에 적게는 1만엔 이상, 많게는 10만엔이 넘게 오른 전기요금 고지서를 인증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민영화가 완료된 고속도로와 철도 그리고 공항의 높은 이용요금들로 도시간 이동이 제한 될 지경이다. 철도는 돈 안되는 지방의 적자 노선들은 칼같이 폐쇄했거나 곧 없앨 예정이다. 

이미 계층 이동이 막혀버린 일본 사회. 이젠 지방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고립 되는 셈이다. 형편이 어려우면 가고 싶은 곳도 가기 어려운 '이동빈곤'이 일본의 파탄 난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현실이다.

한국과 일본은 인구 구조나 산업 구조가 비슷하다. 인구감소와 저출산 고령화등 사회 문제도 한국이 일본의 경험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굳이 파탄나버린 민영화의 폐해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다.


나는 민영화 천국에 산다 [쿠키 칼럼]

김동운
1978년 서울출생.  일본계 모터싸이클 회사의 한국지점 입사를 계기로2008년 일본으로 넘어와 글로벌 IT기업의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하며 한일 양국에 한 발씩 걸친 경계인으로 살고 있다. 현재거주지는 시노노메(東雲). 김동운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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