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D.P.2’ 진정성이 가장 중요했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8-04 06: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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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 “‘D.P.2’ 진정성이 가장 중요했다” [쿠키인터뷰]
배우 정해인. 넷플릭스

스물한 살 이등병의 손에선 걸레와 행주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쉴 새 없이 내무반 곳곳을 쓸고 닦아야 해서다. 등을 꼿꼿이 펴고 앉느라 허리도 매일 아팠다. 내무반에서 겨우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었던 건 상병이 된 후. 3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정해인은 “계급사회를 처음 경험한 곳이 군대”라며 이렇게 돌아봤다.

정해인이 전역 10여년 만에 군복을 다시 입었다. 넷플릭스 ‘D.P.’ 시리즈 때문이다. 2021년 공개된 시즌1은 한국은 물론 일본·베트남·대만 등 해외에서도 화제였다. 지난달 28일 세상에 나온 시즌2는 전작보다 한층 무겁다. 조석봉(조현철) 일병 탈영 이후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 등 주요 인물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정해인도 시즌2 대본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시즌1이 커다란 사건으로 마무리됐잖아요. 그 뒷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겠더라고요. 진정성 없인 이야기가 가벼워질 것 같았습니다.”

안준호는 겉으론 고요해도 속에선 태풍이 몰아치는 인물이다. 고집과 강단도 있다. 그는 군이 부대 내 사건·사고를 은폐한 정황이 담긴 증거를 들고 달아난다. 자신을 잡으러 온 D.P. 14명과 홀로 싸우기도 한다. 정해인은 “준호는 가족을 지키느라 책임감이 컸던 데다, 신우석(박정우)의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한 죄책감까지 가졌다. 그랬기에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나라도 해야겠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봤다. 한 감독은 이런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의 “융통성 없는 얼굴”이 좋았다고 평했다.

정해인 “‘D.P.2’ 진정성이 가장 중요했다” [쿠키인터뷰]
‘D.P.2’ 스틸. 맨 오른쪽이 정해인. 넷플릭스

“저는 감독님 말씀을 가치관과 철학이 확고하단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저도 비슷해요. 납득할 수 없는 일엔 ‘왜 그러지’라며 제동을 걸곤 해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거나 잘못 아는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준호처럼 탈영까진 못할 것 같아요. ‘D.P.2’를 찍으면서도 자신에게 ‘너라면 할 수 있었겠어? 네게 그런 용기가 있어?’라고 계속 질문을 던졌어요.”

시즌1이 워낙 흥행해 감독과 배우들 모두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해인은 한 감독과 ‘아무 일 없었던 듯 힘 빼고 촬영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부담을 느끼면 현장에 있는 모두에게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보는 사람이 부대끼고 현장에서 잡음도 난다”는 생각에서다. 마음을 비웠어도 “단 한 장면도 만만하지 않았다”고 회상할 만큼 촬영은 쉽지 않았다. 이야기가 워낙 무거워서다. 정해인은 “시즌1의 서사를 전부 머리에 집어넣고 시즌2를 찍었다”고 했다. 이렇게 완성한 ‘D.P.2’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D.P.2’는 공개 후 한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에서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호열 역의 구교환과는 함께 연기하며 절친해진 사이. 정해인은 “형(구교환)을 오랜만에 만나 느낀 반가움이 준호와 호열의 재회 장면에 잘 묻어나왔다”고 했다. 준호가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선임은 조석봉이다. 시즌2에서 환영으로만 등장하던 석봉은 6화 쿠키영상에서 마침내 본 모습으로 준호를 마주한다. ‘지금껏 우리는 준호의 그런 웃음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대본엔 당시 준호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됐다. 정해인은 이 장면을 여러 번 찍었다. 그러나 정작 방송에 나간 것은 초반 촬영분이었다. “찍으면 찍을수록 머리로 (준호의 감정을) 계산하게 돼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정해인 “‘D.P.2’ 진정성이 가장 중요했다” [쿠키인터뷰]
정해인. 넷플릭스

정해인에게 ‘D.P.’ 시리즈는 의미가 크다. 그는 “내 필모그래피에 변곡점이 된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한 감독과 처음 만난 2020년 “마음이 엉망”이었다. 그 해 출연했던 tvN 드라마 ‘반의 반’이 시청률 부진을 겪다 조기종영한 데다 개인적인 일도 겹치면서다. 정해인은 “자존감이 바닥이었을 때 이 작품을 만나 큰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돌아봤다. 요즘 그에겐 멜로를 찍어달라는 팬들 요청이 폭주한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히트시켜 ‘국민 연하남’으로 불린 정해인 아니던가.

“일부러 멜로를 피하진 않았어요. 저도 다시 로맨스물을 하고 싶고요. 요즘 회사와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찾고 있습니다. ‘D.P.2’를 두고 호불호가 갈린다는 걸 알아요. 재미와 감동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줘야 하는 직업을 가졌잖아요. 그러니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죠. 어떤 종류의 관심이든 감사하게 여기면서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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