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반려견이 보낸 온 편지

콘텐츠 기획자 강덕응씨의 첫 책 ‘냉이가 아빠에게’
벚꽃 피는 날 와서 16년을 함께 한 반려견 냉이
모든 걸 내맡긴 강아지에게 가슴을 열어 준 아빠
함께 웃고 놀고 걸었던 강아지를 보낸 슬픔을
반려견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씻어주는 에세이

기사승인 2023-09-28 0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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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반려견이 보낸 온 편지
‘냉이가 아빠에게’를 쓴 강덕응씨가 책에 들어간 삽화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추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슬픔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반려견과의 추억은 어떨까. 반려견을 기르는 많은 이들이 “한번 떠나보내고 나면 너무 슬퍼서 다른 개를 집에 들이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냉이가 아빠에게’를 쓴 강덕응씨도 그랬다. 강씨는 올해 1월 반려견 ‘강냉이’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냈다. 예쁜 꽃밭을 묫자리로 봐두었지만 차마 묻을 수 없었다. 유골함을 거실에 가져오곤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를 한달.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슬픔은 슬픔으로 씻긴다고 하잖아요. 냉이를 보낸 뒤 우느라고 다른 생활을 못 할 정도였는데, 이 책을 쓰면서 냉이와 저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저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어요.”

지난 21일 서울 연남동 이야기나무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강씨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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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응씨가 자신의 첫 책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이 책의 첫 대목은 이렇다.

‘나는 강아지로 살고 강아지로 죽었다. 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6쪽)

책 제목처럼 반려견 냉이의 시선으로 쓴 책이다. 냉이는 15년6개월 강씨 가족과 함께 한 삶을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삶은 만족스러웠고 나는 나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 것 같아 조금 아쉽기는 하다. 꼬리 몇 번 흔들고, 땅에 코를 박고 몇 번 킁킁거린 것뿐인데 벌써 늙어 있었다.’(12쪽)

왜 ‘아빠가 냉이에게’가 아니라 ‘냉이가 아빠에게’로 썼을까.

“이 책은 제가 쓴게 아니라 냉이가 썼다고 제가 그래요. 냉이가 내 맘 속에 이렇게 성큼 들어올 수 있었던 건 개의 영혼이 그만큼 깨끗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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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책을 들어 보이는 강덕응씨. 사진=박효상 기자


강씨는 이렇게 말했다.

“냉이가 그냥 살다가 어느 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렇게 사라져 버려선 안된다 싶었어요. 냉이는 충분히 자기의 삶을 정리해서 이렇게 자서전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거에요.”

그는 이 책을 2주만에 썼다고 했다. 평생 광고와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해왔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쓴 건 처음이었다. 아침마다 냉이와 산책하던 길을 걸으며 추억을 떠올리고, 집에 돌어와 냉이의 마음으로 냉이의 자서전을 써내려 갔다. 강씨는 글을 가제본해서 가족들과 한권씩 나눠 가지고 냉이의 유골함과 함께 묻어주려 했다.

“가족을 위해 책을 만들던 중에 이야기나무 출판사를 만났어요. 대표님이 책을 정식으로 출간해보자고 하셔서 일이 이렇게 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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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가 아빠에게’ 표지. 이야기나무 제공

담백한 삽화가 실린 200쪽의 얇은 책에는 반려견 강냉이가 강씨 가족과 함께 한 추억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벚꽃이 지는 날 입양된 사연부터 카페트에 오줌 싼 이야기, 시츄견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놀림 받은 이야기, 산책길에 만난 다른 강아지들 모습, 목욕하다 졸도한 에피소드와 제주도 다랑쉬오름에 엄마아빠와 함께 오른 경험, 견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냉이의 심정으로 생생하게 적었다. 감탄스러울 정도로 강아지 마음에 쏙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글이다. 예컨대 이런 대목.

‘나는 냄새로 세상을 만나고 자연과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사색했다. 땅속부터 나는 미끌미끌한 지렁이 냄새에서 땅의 기운을 느끼고, 산책길에서 만나는 잣나무의 끈적거리는 냄새를 통해 내 영역을 가늠했으며, 노인정에서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넘어오는 커피 냄새로 상상력을 키우고, 감국 꽃에서 풍기는 노란 가을 냄새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아빠엄마가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냉이는 위트를 구사했다.(강씨는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약간의 유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이 맞붙은 축구시합을 보면서 아빠와 냉이가 이런 대화를 주고 받는 식이다.

아빠: 냉이 너는 어느 팀 응원할 거야? 너희 조상이 중국이라고 중국 응원하고 싶은 거 아냐?

냉이: 아빠! 그래서 아빠가 저보다 한 수 아래인거에요. 왜 응원을 해요. 그냥 공놀이 모습을 즐기면 되는 거죠. 그리고 축구에서 중국을 응원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요?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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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가 아빠에게’의 삽화. 이야기나무 제공
 
책을 읽다보면 때론 미소 짓게 되고 때론 눈물이 맺힌다. 강아지들은 왜 이다지도 깊이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걸까.

“제가 침대에 누우면 냉이가 옆에 와서는 제 가슴에다가 머리를 탁 얹어요. 주먹 만한 머리가 가슴에 닿는 순간, 얘는 무슨 생각으로 자기를 나에게 다 맡길까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준다는 걸 느끼니까 거기에 제 마음이 무너지는거죠.”

강씨는 책에서 ‘어떤 거짓도 없는 관계’라고 표현했다. 냉이를 기른게 아니라 같이 살았다고 강조했다.

책이 나온 뒤 강씨의 아내는 매일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에 들러 “냉이를 만나고 온다”고 했다. 냉이처럼 반려견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냉이가 죽기 전 일주일이 그 뒤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가만히 엎드려 밥도 안 먹으니까 어떻게 할 수 없고 미치겠더라고요. 그냥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는거죠. 저는 무신론자인데도 그냥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어요.”

냉이가 그려진 책을 들고 강씨는 멋쩍게 웃었다. 이 책이 반려견 아빠가 반려견의 마음으로 쓴 추도문인 줄 알았더니, 어쩌면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는 무신론자의 기도문일지도 모르겠다.

‘냉이가 아빠에게’ / 이야기나무 /209쪽 / 1만5000원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반려견이 보낸 온 편지
강덕응씨가 자신의 책을 설명하며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김지방 기자 fattykim@kukinews.comㄹ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