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2)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두 번째 이야기

입력 2023-11-23 09: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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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2)
페르메이르의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일부.

원근법 이용 3차원의 공간 완벽하게 모방 재현

페르메이르는 대부분 왼쪽 창에서 빛이 들어오는 구도를 즐겨 그렸다. 창에 걸린 커튼의 붉은색이 유리창을 통해 비치며 빛이 닿지 않는 벽의 어두운 부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여인의 얼굴과 녹색 커튼, 탁자 위의 과일, 그리고 아래의 벽은 빛을 직접 받아 가장 밝은 부분이다.​

금보다 비싼 청금석(靑金石, 나트륨, 알루미늄 따위를 함유한 규산염 광물)을 갈아 만든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의 파란 창과 청화백자, 그리고 카펫의 파란색은 붉은 커튼과 여인의 금발에 대비되며 강조되고 있다.

라피스 라즐리는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이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베네치아에서 수입되어 이탈리아 전역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팔려 나갔다. 이후에도 라피스 라줄리가 이렇게 비싸게 된 건 이슬람제국이 아프카니스탄으로 가는 육로를 막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이집트로 돌아와야 했기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귀한 준보석인 라피스 라즐리는 베네치아가 가장 가격이 저렴한 1/5가격이라서 베네치아 화파의 작품, 특히 벨리니 가문의 조반니 벨리니와 그의 제자인 '회화의 황제'인 티치아노의 그림에서 마음껏 사용되었다.​

편지의 사연은 벽에 걸린 그림에 힌트가 있다. 사랑의 전령 큐피드가 신의와 속임수를 뜻하는 가면을 오른발로 부수고 있다. 연인에게서 온 편지이지만 그 내용은 사랑의 맹세를 지키기로 했던 신의를 어기고, 여인에게 거짓으로 늘어놓는 속임수가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인문학의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2)
여인의 소매에 광택을 나타내기 위해 점과 점을 찍고 흰 선으로 하이라이트를 준 부분이 선명하게 보인다)​.

카펫에도 도트가 보인다. 19세기 새로운 화풍을 찾기 위해 조르주 쇠라나 폴 시냑은 이런 점으로만 그림을 그렸기에 점묘법의 신인상주의라고 한다. ​유화 물감은 마르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색을 혼합하면 탁해지는 성질이 있어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자 색을 병치하였다. 그리고 시각적인 착각에 의해 과학적으로 탐구한 색 혼합의 효과를 의도했다.

모네의 경우 색을 쌓았고, 빈센트 반 고흐는 해칭으로 길게 변형된 점묘를 자신의 개성으로 만들었다. 세잔의 경우 튜브에서 짠 그대로의 물감을 희석하지 않고 사용했다. 반 고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묘사하기 위해 흰 물감 튜브를 캔버스에 대고 그대로 짜서 마티에르와 빛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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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 놓인 화려한 카펫.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에서 탁자 위에 놓인 화려한 카펫은 아나톨리(현 튀르키에 영토)에서 수입한 메달리온 우사크 양탄자이다. 우샤크 양탄자는 르네상스기 유럽의 부유층의 가정에서 볼 수 있었고, 실키하고 발광하는 털실로 알려져 있다.

염료는 시나몬, 테라코타 틴트, 금, 블루스, 그린, 아이보리, 샤프란, 그리고 그레이가 있다. 이 양탄자가 들어간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뚜쟁이', '잠든 하녀'(1656~1657), '와인 글라스'(1653~1661), '버질 옆에서 레슨을 받는 여인 혹은 음악 교습'(1662~1664), '음악회'(1662~1664), '마리와 마르타의 집에 찾아온 예수'(1654~1655) 등에서 볼 수 있다. 양모 카펫의 포슬거리는 질감과 반짝이는 실키함은 정묘한 사실주의의 대가 페르메이르의 표현 방법이다.​

그는 이렇게 미세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 했기에 일 년에 한두 작품 밖에 완성할 수 없었다. 11명의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여관업과 화상 등 다른 부업을 겸했고, 장모의 땅에서 나오는 소득도 있었지만 그 해에는 홍수가 나서 전혀 소출이 없었다. 그리고 1672년은 루이 14세가 프랑스 군을 이끌고 네덜란드를 침공한 ‘재앙의 해’였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제 3차 전쟁이 발발하여 법원, 학교, 극장, 상점이 문을 닫고, 중산층 가정들이 무너졌으며, 경제는 붕괴되었다.

팔리지 않는 작품에 우울증과 광기. 43살로 생 마감

설사가상으로 유일한 후원자였던 페테르 판 라이번이 1674년 죽자 페르메이르 작품의 판로가 완전히 막히고 말았다. 그림 값은 떨어지고 작품이 팔리지 않았다. 14명이라는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짊어진 부담감에 우울증과 광기로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던 페르메이르는 43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1675년 12월 16일 아내가 남긴 일기에는 “프랑스와의 긴 전쟁 동안 남편은 자신의 예술품을 판매할 수 없었고, 오히려 손해를 입었다, 그는 거래하던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앉아 있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인문학의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2)
그림 속의 녹색 커튼.

페르메이르는 다시 녹색 커튼을 그려 넣으며 관람자가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의 내밀한 장면을 훔쳐보는 것 같은 상황을 설정했다. 그래서 극장처럼 막이 열리고 편지를 읽는 무대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을 구입하는 컬렉터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듯하다.​

페르메이르는 작품 중 '회화의 알레고리'(1666~1668)는 커튼을 이용해 회화의 세계와 현실을 뚜렷이 구분했다. 커튼은 관람자와 화가의 작업실을 분리하며, 그림 속 장면이 현실이 아니라 은유적 내용이란 것을 말해준다. 그곳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함께 역사, 명예, 승리, 기술 등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회화예술에 관한 알레고리이다.

페르메이르는 원근법을 이용하여 3차원의 공간을 완벽하게 모방하여 재현해 놓으며 회화 역시 연극처럼 현실을 재현하여 고정시키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회화의 세계는 화면 밖의 관객이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임을 묘사한다. 이 작품의 '커튼'에서 영감을 받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인간의 조건'(1933)에 커튼을 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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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커튼의 아랫부분에 흰 점들이 몰려 있지만 전체적으로 균일한 도트를 발견할 수 있다. 

'편지를 읽는 여인'과 '잠든 하녀'에서 그의 접근 방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서로 다른 후퇴하는 평면과 현실의 간극을 쌓아 올린다. 프레임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녹색 커튼, 빨간 커튼 아래 열린 창문을 보여주는 코너의 전망, 그리고 뒷벽에는 공간적 깊이를 가진 또 다른 액자 그림이 있다. 그리하여 방 안 모든 사물들의 간격은 그림 전체에 깊이감을 가져다 준다. ​창문의 소박한 원근법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다.

이 작품의 원근법 소실선은 소녀의 이마와 같은 높이에 있고 소녀의 뒤에 있는 일점 소실점을 나타낸다. 따라서 페르메이르가 의도한 관람자의 눈높이는 젊은 여성의 머리 높이이다.​

열린 창문에서 편지를 읽고 소녀는 고요함과 공간 그리고 창문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을 주는 그림이다. 페르메이르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삶의 한 순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귀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어제 내린 비는 오늘의 빛나는 대기를 만들어주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받은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삶의 순간순간을 감사해야겠다.​

미술관 관람을 마친 후 암스테르담 중앙 역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델프트의 페르메이르 생가를 방문했다. 그의 생가는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었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창문을 볼 수 있어 감격스러웠다. 또한 '델프트의 풍경', '델프트의 작은 거리, 골목길'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화가는 갔지만 그의 예술과 감성은 3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진한 메시지로 살아 있다. 델프트의 거리를 절규하며 방황했을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질 듯했다. 델프트는 페르메이르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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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의 베르메르의 집​​. 초록 덧문이 열린 곳이 아틀리에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납으로 된 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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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은 베르메르와 그의 가족들이 살던 장모 마리아 산스의 집이고, 오렌지색은 예수회의 비밀스러운 가톨릭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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