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다 덜어내자 ‘서울의 봄’ 보였죠”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1-23 17: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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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다 덜어내자 ‘서울의 봄’ 보였죠” [쿠키인터뷰]
배우 정우성.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년 전 초겨울, 배우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에게 한 시나리오를 받았다. 오랜 지인이던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 촬영을 막 마쳤을 때였다. 감독이 건넨 시나리오는 1979년 발생한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보며 정우성은 생각에 잠겼다. ‘헌트’에서 자신이 연기한 김정도와 같은 결을 가진 인물로 보여서다. 작품의 시대 배경 역시 비슷했다. 부담감에 출연을 고사한 정우성을 움직인 건 작품을 엎겠다는 김성수 감독의 한 마디였다. 그의 말에 정우성은 곧장 출연을 결정하고 격동의 근현대사에 또 한 번 뛰어들었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이야기다.

“우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지난 21일 서울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이 담담히 말했다. 전작으로 인해 관객이 이태신에 이입하지 못할까 걱정이었단다. 그를 움직인 건 김 감독의 뚝심과 진심. 정우성이 출연을 결정하자 김 감독은 그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던 당시 인터뷰 영상을 참고 차 보냈다고 한다. 정우성은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를 이태신에게 덧입히고 싶어 한 것 같다”면서 “연기하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려는 자세를 계속 떠올렸다”고 했다.

‘서울의 봄’은 이태신으로 대비되는 물과 전두광(황정민)으로 대표되는 불의 대립구도를 취한다. 권력욕에 미쳐 날뛰는 전두광과 달리 이태신은 장성들을 거듭 설득하고 소신을 지키려 한다. 그는 내내 전화선을 붙들고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 전두광과 맞붙는 장면이 별로 없던 정우성은 전두광 패거리가 뭉치는 촬영이 있을 때면 일부러라도 가서 보곤 했단다. 여느 때보다도 상대 연기를 많이 관찰했다. 정우성은 “연기를 전략적으로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두광의 에너지를 막연히 보고 싶었다”며 “전화선 너머에 있을 전두광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정우성 “다 덜어내자 ‘서울의 봄’ 보였죠” [쿠키인터뷰]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전두광은 감정에 충실해요. 그런 만큼 열정적으로 타오르죠. 이태신을 연기해야 하는 저로서는 두려움이 컸어요. 자유로운 전두광과 달리 이태신은 표현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감정을 내면으로 끌어당겨 삭혀야 하니 연기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이태신은 본분을 지키려 해요. 그게 옳은 거고 동시에 현실적이죠.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그의 존재는 영웅적으로 비쳐요. 하지만 극에서 이태신이 ‘내 이름 석 자 앞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보라’고 하듯, 그는 맡은 바에 충실한 군인일 뿐이에요. ‘서울의 봄’은 이태신과 전두광 중 어떤 쪽이 정당한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김성수 감독과 ‘비트’·‘태양은 없다’·‘무사’·‘아수라’에 이은 다섯 번째 호흡이다. 그의 작품 스타일에 누구보다도 정통한 정우성은 ‘서울의 봄’을 두고 “김성수 감독 영화의 정수”라고 표현했다.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김 감독의 영화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나서다. ‘서울의 봄’은 정의 대결이나 선악 대립이 아닌 인간군상 자체를 보여주며 12·12 사태를 조명한다. 정우성 역시 이태신을 연기할 때 정의로움을 의식하려 하지 않았다. “의미를 내세우는 순간 캐릭터가 퇴색될 것”을 우려했다. 정우성은 “역사 사건이라는 무게에 짓눌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모든 걸 다 덜어내고 인간본성을 탐구하는 자세만 남기자 ‘서울의 봄’이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객 분들이 누굴 응원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이를 강요하진 않겠다”며 미소 지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