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가짜 고춧가루 제조와 유통 조장하나

공사, 김장철 수급안정 취지 '중국산 절편 건고추 2773톤' 수입
씨 없는 건고추로는 사실상 고춧가루 제조 불가능
국내산 다른 품종 고추씨와 혼합 가능성 있어 ...사후관리 철저해야

입력 2023-12-26 22: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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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가짜 고춧가루 제조와 유통 조장하나
쿠키뉴스가 입수한 중국 청도의 출하 전 고추 건조 모습(기사와 무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최근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공매처분한 건고추가 오히려 국내 업체들의 가짜 고춧가루 제조와 유통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지난 11월 '국내 김장철 고추가격 안정화'를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씨 없는 건고추 총 2773톤(약 155억원)을 수입해 같은달 2일부터 5~6차례에 걸쳐 경인지역을 비롯한 전국 고춧가루 가공업체 등으로 입찰을 통해 모두 처분했다.

그런데 고추피(절편)만 수입하는 공사의 이 행태가 업계로부터 가짜 고춧가루 제조와 유통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받고 있다. 식품위생법 제7조 제4항, 보건범죄단속법 제2조 제1항 제2호 등 현행법에 따르면 고춧가루 제조와 관련해 제 품종이 아닌 다른 품종의 고추씨를 첨가해 고춧가루를 제조·가공하는 행위는 위법으로 규정돼 있다.

다시 말해 고춧가루의 맛과 색상완화를 위해선 같은 품종의 고추씨가 20~25% 정도 혼합돼야 하는데, 공사가 수입한 중국산 건고추 물량에는 고추씨가 빠져 있어 다른 품종의 고추씨를 혼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춧가루에는 캡사이신(capsaicin) 등 영양성분이 다량 함유된 고추씨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고추씨 없이 고춧가루를 제조·유통할 경우 도매상이나 소비자의 구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업계나 전문가의 설명이다.

양정은 오산대학교 호텔조리계열 교수는 "고춧가루에서 고추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알맞게 매운맛을 내기도 하지만 고추씨에는 폴리페놀이나 항산화 성분에다 불포화지방산도 함유돼 있어 영양적인 면에서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식물 생화학 및 생명공학 저널에 게재된 고추의 주된 성분을 분석한 논문에서도 고춧가루의 핵심 성분인 캡사이신의 경우 과피보다 씨에서 약 10배 많이 함유돼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경인지역 한 고춧가루 가공업체 관계자는 "고추피는 고추씨보다 비싸기 때문에 피로만 고춧가루를 만드는 업체는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며 "고추씨가 빠지면 고춧가루 본래의 맛을 내지 못하는데 어떤 도매상이나 소비자가 그렇게 만든 고춧가루의 구매를 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수입한 중국산 고추피는 태양초로서, 일반 수입산 냉동고추와는 달리 국내산과 혼합해도 원산지 등을 식별하기 어렵다"며 공매를 주도한 공사의 업체별 사후관리의 중요성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김장철 수급안정을 위해 업체들에 2개월 이내 소진 조건으로 판매하고, 지역본부가 관할 업체를 대상으로 사후관리를 추진 중에 있다"며 "씨가 함유된 통고추 수입의 경우에는 내부 확인이 어려워 절편된 고추를 통해 병충해, 곰팡이, 부패도 등을 정확하게 품위검사한 뒤 수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절편 고추만으로도 고춧가루 제조는 가능하지만 가공업체가 소비자 선호 및 시장가격 등을 고려해 중국산 냉동고추와 혼합 가공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민간업체가 수입하는 냉동고추의 경우 정부로부터 관세를 적용받는 상황이고, 수분을 빼고나면 양이 얼마 남지 않아 이익 등을 고려하면 중국산 냉동고추와의 혼합 가공은 여러 면에서 타당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당초 공사의 수입 명분인 '김장철 고추가격 안정화'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여기에다 공사의 건고추 수입으로 인해 그 분량만큼 관세가 줄어들면서 국가적 손해를 끼쳤고, 평소 민간업체가 수입하는 평균가격 1톤당 3300달러보다 약 1000달러나 더 비싸게 수입된 것으로도 전해지면서 고춧가루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목소리도 높다.

고상규 기자 sskk6623@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