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운명의 13라운드, 반칙패로 끝나
3월31일 시작된 경기가 날짜 넘겨 4월1일 자정까지 이어져
변상일 9단-중국 용병 양카이원 9단 에이스결정전서 해프닝
승리한 변상일 9단이 오히려 대국 속행 의지 밝혔음에도 무산

기사승인 2024-04-02 10: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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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정관장 천녹 주장 변상일 9단과 의정부 중국 용병 양카이원 9단 대국에서 ‘반칙패’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용찬 심판이 판정을 하는 모습. 한국기원

“지금 사석을 들어내다가, 다 안 들어내고 시계를 눌렀거든요. 반칙패입니다.”(이용찬 심판)

3월31일에 시작한 경기가 날짜를 넘겨 ‘무박 2일’로 이어지며 자정을 지난 순간, 한국 주장과 중국 용병이 펼친 명승부는 뜻밖의 ‘반칙패’로 막을 내렸다. 중계석에선 “중국과 룰이 다르기 때문에 모를 수 있다”, “양카이원 선수 이마에 땀이 맺혔는데 안타깝네요”와 같은 아쉬움의 멘트들이 흘러나왔다.

지난 1일 막을 내린 2023-202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3라운드 4경기 정관장 천녹과 바둑 메카 의정부 경기가 반칙패 해프닝 끝에 정관장의 3-2로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항의를 하지도 않았는데 반칙승을 거두게 된 변상일 9단이 오히려 “(상대가 중국 선수라 잘 모를 수 있는데)너무 엄격하게 룰을 적용한 것 아니냐”고 대국 속행 의지를 드러냈으나, 한 번 선언된 반칙패는 되돌릴 수 없었다.

이날 선발 출전한 의정부의 중국 용병 양카이원 9단은 최근 물오른 기세를 입증하듯 1국에서 박상진 9단을 손쉽게 제압하면서 팀에 귀중한 승점을 안겼다.

반면 정관장 천녹 주장 변상일 9단은 의정부 박건호 9단에 일격을 허용하면서 초반 두 경기는 의정부가 싹쓸이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의 마지막 희망을 불태우고 있던 정관장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고, 김정현과 홍성지가 각각 이원영⋅김명훈을 꺾고 승부는 2-2, 에이스 결정전으로 이어졌다.

뒤가 없는 양팀은 주장 변상일 9단(정관장), 중국 용병 양카이원 9단(의정부) 맞대결을 성사시켰다. 대국이 시종일관 엎치락뒤치락 하며 팽팽하게 이어지다보니, 3월31일에 시작한 이 대국은 4월1일로 넘어갔다.

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극미한 ‘반집 승부’ 국면에서 반칙패를 당한 중국 양카이원 9단(오른쪽)이 망연자실한 모습. 승자 변상일 9단 또한 기뻐할 수 없었다. 한국기원

건곤일척의 패싸움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던 순간, 대국자 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를 감상하던 바둑 팬들마저 허망하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양카이원 9단이 팻감을 사용하기 위해 백돌 7개를 따내는 순간, 초시계는 “아홉”을 불렀고(시계에서 열, 소리가 나면 시간패가 선언된다), 다급해진 양카이원 9단이 돌을 6개만 들어낸 이후(하단 사진 참조) 황급히 시계를 먼저 누르고 이후에 다시 백돌 1개를 마저 집어들었다.

그러자 변상일 9단은 즉각 팻감에 응수했고, 양카이원 9단은 좌측 패를 때려내면서 대국은 이미 3수가 진행됐다.

바로 이때, 심판 이용찬 8단이 대국장에 들어와 시계를 ‘일시정지’한 이후 양카이원 9단의 반칙패를 선언했다. 한국 주장과 중국 용병이 바둑리그 무대에서 펼친 에이스결정전, 그것도 ‘무박 2일’로 경기가 이어지며 팬들의 관심이 최고조에 오른 상황에서 결정된 허망한 종국이었다.

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양카이원 9단은 가운데 백돌 1개를 들어내지 않고 먼저 시계를 눌렀고(오른쪽에 단 1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과 왼쪽에 시계를 누르는 손이 보인다), 이후 즉시 백돌을 들어냈다. 하지만 이후 몇 수 더 대국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심판의 반칙패 선언을 막지 못했다. 바둑TV 캡처

대국을 중단시킨 이용찬 심판은 사석을 모두 들어내지 않고 시계를 눌렀기 때문에 반칙패라는 설명을 이어갔고, 변상일 9단이 오히려 룰을 되묻는 상황이 이어졌다.

양카이원 9단은 어떤 상황인지 영문을 모른 채 있다가 반칙패가 선언됐다는 얘기에 망연자실했다. 팽팽한 국면에서 께름칙한 반칙승으로 바둑을 승리하게 된 변상일 9단 역시 의아함을 감추지 않았다.

바둑TV 생중계를 시청하던 팬들도 저마다 입장을 표출하며 반칙패 처사가 다소 과했다는 지적을 이어갔다. 한 바둑 팬은 “재미 있었는데 아깝다”면서 “누가 이겨도 재밌는 바둑이었다. 두 선수 모두 수고 많았다”고 격려했다. “이런 상황은 1차는 경고 2차는 실격으로 하자”거나 “사석이 많으면 시간이 모자란데 규칙을 바꿔야 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바둑TV 생중계를 시청하던 팬들이 댓글을 남기며 의견을 표출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한편 바둑리그를 주최하고 있는 한국기원은 “판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지난해 4월부터 상임심판제도를 도입해 전 경기 배치하고 있다”면서 “여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규정에 의거해 심판은 공정하게 대회를 진행한다. 해당 대국은 바둑 경기 규정 제4장 제18조 1항 ‘착점 후 계시기를 누르고 사석을 들어낸 경우 반칙패’에 해당돼 반칙패 선언을 했기 때문에 판정에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반칙승을 거둔 변상일 9단이 오히려 의문을 표시한 것처럼 해당 규정은 실제 대국에서 활용하기 쉽지 않고 심지어 관련 룰 자체를 모르는 프로기사도 많다.

마지막 초읽기 ‘아홉’ 상태에서 사석을 2개 이상 들어낸 이후(즉 돌을 따내는 중이라는 의사표시를 한 이후) 일시정지를 누르고, 돌을 다 들어낸 이후 다시 일시정지를 풀면서 재빠르게 시계를 누르는 동작 자체가 가능한지 여부도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규정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경기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규칙⋅규정 개정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반칙패 선언을 듣는 순간 양카이원 9단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중계석에서도 안타까워했지만 심판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바둑TV 캡처

바둑리그 중국 용병 출전 경기에서 ‘반칙패’ 해프닝
앙카이원 9단은 대국이 끝난 후 중국 SNS에 해당 대국 소회를 전했다. “규정을 몰랐지만 그래도 내 책임”이라는 내용이다. 양카이원 9단 SNS 갈무리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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