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부끄러운 민낯

기사승인 2018-01-18 05:00:00
- + 인쇄
[기자수첩]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부끄러운 민낯우리는 도저히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거나 조율이 어려울 때 “법으로 해결하자”거나 “법정에서 보자”는 말을 한다. 최후의 수단이자 가장 강력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때론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방법으로도 활용한다.

하물며 개인과 개인 간의 소송이 이럴진대, 국가가 또는 대기업이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엄청난 압박감과 부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쳇말로 힘에 눌려 녹아버릴 지경일 것이다.

문제는 국가가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출연·출자하고, 자율적 운영권한을 부여한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서 일련의 행위가 왕왕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에는 비판적 기사를 썼다고 언론과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보공단에 대해 법원은 건보공단이 명예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같은 혐의에 대해 검찰은 언론의 특수성과 기사 전체내용 등으로 볼 때 비방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기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섭식장애 등 정신적·육체적·시간적 피해와 손실을 겪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물론 소송과 관련된 어느 누구도 사건이 종결된 후로 지금까지 사과의 말을 전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건보공단 법무지원실 소속 변호사는 “소송이 최후의 수단 혹은 가장 강력한 해결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소송은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며 “(언론 뿐 아니라 개인이라도) 어떤 일에 관여돼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라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변호사이자 건보공단 직원은 “객관적 판단을 받기 위해 오히려 덜한 부담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피고의 압박을 줄이고,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중재나 합의, 조율 과정을 소송을 동일선상에 놓거나 고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건보공단은 2016년 체육고등학교 권투 특기생들이 연습경기 중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급한 치료비를 반환하라며 교육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패소했다. 같은 해 한 중학생 야구선수가 연습 중 공에 맞은 부상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고, 졌다.

개인을 상대로도 정확한 사실 확인이나 인과관계 증명에 앞서 소송을 걸었다. 2014년 예전부터 앓고 있는 질병(기왕력)이 있는 B씨를 때려 상해를 입힌 A씨에게 기왕력에 의한 질환 치료비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고 소송을 통해 전액 반환을 요구했고, 역시 졌다.

이 외에도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가하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 등을 상대로 다양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소송이 내부적으로 계속 늘어남에 따라 추가적인 법률지원이 필요하다”며 5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12명의 변호인단을 꾸렸다. 지역본부에는 별도의 소송전담팀을 갖춰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과연 시시비비를 가리자며 고소장부터 제출하는 건보공단의 행위가 옳은 것일까. 주변에서는 부당한 환수조치나 삭감, 잘못된 건강보혐료 부과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누구도 책임은 지려하지 않고 민원을 떠넘기기 바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소송으로 압박하고 힘을 과시하기에 앞서 내적 쇄신과 국민건강보호라는 설립목적과 책임을 다해야하지 않겠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문제 해결은커녕 적어도 묻는 말에 답변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2017년 12월 28일 임명된 김용익 신임 이사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을 질병의 위험에서 보호하는 건강보험과 노후의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운영하는 기관으로 국민의 건강한 삶을 책임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즉,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지원을 받기 위해 매달 보험료를 납부하고, 1만4000명에 육박하는 건보공단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심지어 건보공단이 제기하는 소송비도 건강보험 재원에서 지출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건보공단과 직원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대로 된 지원을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하고 바꿔야할지를 먼저 고민해야할 것이다. 적어도 “권한이 없다. 담당영역이 아니다. 법으로 해결하자”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한다. 민낯이 아름답도록 가꿔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