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고창의 은퇴자공동체마을 입주자 여행기 (2)

기사승인 2020-09-26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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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아침 해가 떠오르고 물안개가 가시기 시작하면 고창 은퇴자공동체마을 숙소 앞의 운곡호수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고창의 은퇴자공동체마을엔 네 가족이 아래위 층에 산다. 이곳에 모이기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다만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마련한 마당에 함께 섰을 뿐이다. 공동체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다. 그저 각자 편한 대로 보고 싶은 것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간다. 그마저 귀찮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끔 하늘과 물, 그 물에 비친 산을 본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오래전 북촌의 정독도서관 옆 골목의 시멘트 옹벽에서 미당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를 읽고 고창과 선운사와 동백을 가슴에 품었다.
아래위 집 생활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도록 서로 간에는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옆집에 사는 그의 손에 참기름 냄새가 솔솔 풍기는 잡채가 한 사발 들려 있었다. 그가 돌아간 후엔 아랫집에서 부추와 오징어가 입맛을 돋우는 부침개를 한 접시 들고 왔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선운사 입구의 미당 서정주 시비는 1974년 세웠으며 그의 시 ‘선운사 동구’가 손글씨로 새겨져 있다. 미당의 시 외에 김용택 시인은 ‘선운사 동백꽃’을 썼고, 최영미 시인은 ‘선운사에서’를 썼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도 이웃들이 이렇게 살았다. 음식 냄새가 담을 넘으면 아랫집과 윗집 그리고 옆집에 음식 그릇을 들고 심부름을 했다. 긴 세월을 겪어내고 낯선 고장 고창에 와서 음식을 나누는 이웃이 생겼다. 미당의 시와 동백꽃, 꽃무릇, 단풍만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는데 이웃이 추가되었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고창의 선운사 입구에서 찾아 읽은 미당의 시는 ‘고랑’이 ‘골째기’로, ‘오히려’가 ‘상기도’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훨씬 더 미당답다고 생각을 했다.
오래전 쌀쌀한 12월 초 서울 북촌을 걷다가 정독도서관 옆 골목의 시멘트벽에서 미당 서정주의 시를 한 편 발견했다. 시는 시멘트 돌담에 고정한 작은 철판에 새겨져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시를 읽으며 고창의 선운사와 동백꽃을 가슴에 품었다.

선운사 (禪雲寺) 동구 (洞口)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선운사 대웅전이 기댄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난 3월 말 동백꽃이 진 자리에 꽃무릇이 붉게 피어나고 있다.
올해 동백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가 부르는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동백꽃이 목이 쉬어 남아 있다니. 동백꽃과 막걸리와 육자배기 가락을 이렇게 멋지게 버무린 미당의 고향과 그가 보고자 했던 선운사 동백꽃을 궁금해하며 그해 겨울을 보냈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꽃무릇의 잎 위에 동백꽃이 내려앉아 있었다. 꽃무릇은 9월 말 꽃이 지고 나면 잎이 자라 나오기 시작해 겨울을 난다. 이듬해 여름이 가까이 오면서 주위의 풀과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잎이 스러지고 여름을 나며 땅속 알뿌리는 꽃을 준비한다.
해가 바뀌고 남쪽에서 동백꽃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조바심 속에 선운사의 동백꽃 소식을 기다렸다. 3월 말이 가까워질 무렵 고창의 선운사를 찾았다. 무턱대고 대웅전 뒷산의 울창한 동백나무 군락지 앞에 서서 보니 나무는 크고 잎도 무성한데 정작 꽃은 드물었다. 미당이 보러왔던 동백꽃이 이 꽃이었을까.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9월 꽃무릇이 화르르 필 때 동백은 씨앗을 단단히 여물게 하고 내년 3월 말에 피울 꽃봉오리를 키운다.
선운산 골짜기의 절집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일주문을 나서서 ‘미당 서정주 시비’를 보았다. 정독도서관 옆골목의 시멘트 옹벽에 붙어 있던 옹색한 철판에 새겨진 ‘선운사 동구’ 가 아니라 커다란 돌을 잘 다듬어 손글씨를 새겼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단군기원 사천삼백칠년이라 되어 있으니 1974년에 미당의 손글씨를 새긴 것으로 보인다. 북촌에서 본 시의 ‘고랑’과 ‘오히려’가 ‘골째기’와 ‘상기도’로 바뀌어 있다. 뭐라 딱히 이유를 말할 수는 없는데 이곳에서 읽은 시가 훨씬 더 미당답다는 생각을 했다. ‘골째기’와 ‘상기도’, 이 두 단어 때문이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선운사 경내에서 꽃무릇은 물가, 숲, 바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물들인다.
그해 봄 선운사의 동백꽃을 보기까지 조바심을 냈고 가을이 오기를 다시 기다렸다. 미당 무덤의 국화가 아니라 선운사 일대를 물들이는 꽃무릇의 붉은 꽃을 보기 위함이었다. ‘아직 일러 꽃무릇이 충분히 피지 않은’ 아쉬움을 남기기 싫었기 때문이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꽃무릇은 꽃대 끝에 5~7 송이의 꽃이 피는데, 수술을 길게 뽑아내 마치 한 송이처럼 보인다.
매년 9월 20일 전후로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은 마치 3월 말의 동백꽃과 여름 내내 피어나던 배롱나무꽃의 붉은 색이 스며든 듯 붉게 타오른다. 그리고 10월이 오기 전 처참하게 스러진다. 그렇게 꽃무릇의 붉은 꽃은 땅으로 스며들어 천천히 선운산의 단풍나무와 온갖 나무들을 물들인다. 11월 말 겨울이 오기 전 선운산의 단풍은 유난히 붉게 타오른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상사화는 통상 8월 초에 분홍색 꽃을 피운다. 꽃무릇과 상사화 모두 잎이 진 뒤에 꽃이 피고 꽃이 진 뒤에 잎이 나기 때문에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엄격히 구분하면 꽃무릇과 상사화는 다른 꽃이다.
단풍의 붉은 색은 다시 동백나무로 옮겨가 겨우내 숨죽이고 있다가 3월 말에 피어나는 동백꽃을 물들인다. 고창 선운산에 3월 말에 한 번 오고 9월 20일 쯤 또 한 번 오고 11월 하순에 또 한 번 와야 하는 이유다. 지금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온 산을 불태울 듯 검붉게 물들인 꽃무릇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고창에서 석 달 살기]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오근식은 1958년에 태어났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2019년 7월부터 1년 동안 제주여행을 하며 아내와 함께 800km를 걷고 돌아왔다. 9월부터 고창군과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마련한 은퇴자공동체마을에 입주해 3달 일정으로 고창을 여행 중이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