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과 봉사자는 다르다

기사승인 2020-12-31 05: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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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과 봉사자는 다르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방역 모범시민이 되기 위해 칩거 생활을 하며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정주행’ 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지난 10월7일에 방영된 75회 ‘금 손’ 특집. 손을 사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권동호 수어통역사가 나왔다.

권 통역사는 보건복지부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맡으면서 얼굴을 알렸다. 거리에서 권 통역사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일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등의 인사를 건넸다. 이런 인사를 받은 권 통역사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어를 통역하는 분들이 길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한다’는 칭찬을 듣지는 않아요. 수어통역사들은 그저 우리의 일을 할 뿐입니다.”

통역사가 통역을 할 때 대단한 선의와 봉사 정신은 필요하지 않다. 그게 주어진 업무니까 하는 거다. 이들의 성실한 업무 수행에 대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업무의 결과가 사회에 이로운 영향을 준다고 해서 이들을 천사와 비슷한 사람들로 여길 수는 없다.

‘좋은 일 하는 착한 사람들’ 이미지가 결부된 직업은 수어통역사 뿐만이 아니다. 의사, 간호사, 역학조사관, 119 구급대원 등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놓인 직업인들이 희생적인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발휘하는 희생정신은 정말 영웅적이다. 하지만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이들에게 ‘맡겨놓은 듯’ 희생정신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어긋난 기대는 부작용을 낳는다. 의사들은 이기적인 특권집단으로 비난을 받았다. 영웅에게 요구되는 최고 수준의 이타성을 보여주지 않고, 정책 결정 과정에 집단적 의사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처한 일손 부족, 경력단절, 낮은 처우 문제는 집중 조명되지 않는다. 불철주야 환자를 치료하는 간호사들의 미담은 매일 강조되지만, 정작 간호사들이 원하는 것은 불철주야가 없는 상식적인 업무 강도다.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낸 직업인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직업윤리를 지키며 전문성을 발휘해 업무를 보고 있다면 의무를 다한 것이다. 그 밖에 추가적인 봉사는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영웅이나 천사로 칭송하며 선의와 희생을 기대하는 시각이 직업인의 어깨를 뻐근하게 만든다. 공동체를 지속하는 데 기여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최선의 응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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