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사실 몰랐다? 이름도 생소한 ‘임신거부증’

외국선 종종 보고…임신 특징 안 나타나고 월경 지속

기사승인 2021-01-20 04: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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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사실 몰랐다? 이름도 생소한 ‘임신거부증’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 지난해 10월 20대 여성 A씨가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A씨는 출산 당일에야 임신 사실을 인지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얼마 전에는 집에서 출산한 뒤 아기를 창밖으로 던진 20대 여성 B씨가 영아 살해 혐의로 긴급체포 됐다. 갓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 아기는 발견 당시 알몸 상태였으며 탯줄도 달려 있었다. 가족들은 B씨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상식적인 영아 학대 사건들이 발생하자 일부 네티즌들은 ‘산모의 상태’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임산부라면 배가 나오거나 월경이 끊기는 등의 신체적 변화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출산 당일까지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자신의 아이를 유기하고 살해한 비정한 엄마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일각에서는 산모들의 정신 건강에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생아 학대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재발 방지 등을 위해 실제로 신체적‧정신적 영향이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선 임신을 기대하지 않았거나, 산모의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지능이 낮거나, 성교육이 부족할 경우 임신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김준형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교육이 부족하고 나이가 어릴 경우 임신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 있고, 산모의 지능이 낮아서 적절하게 대처를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전문가는 “오랫동안 임신에 실패하던 사람 가운데 신체변화가 나타나더라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아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임신거부증(Denial of pregnancy)’이 있으면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가 찾아오지 않아 출산 순간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이름도 생소한 ‘임신거부증’은 산모가 임신 자체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일종의 심리적‧정신적 증상으로 알려진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극히 드문 증상이나, 외국에서는 관련 논문 및 사례들이 종종 보고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이 지난해 6월 보도한 기사 내용에 따르면, 한 32세 여성은 출산 직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진통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세 명의 아이를 낳은 바 있는 이 여성은 변기에 앉은 후 양수가 터지면서 압력이 느껴지자 자신이 출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더 이상의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의 정관수술 예약일까지 피임약을 복용했고, 실제 월경이 있었으며 그 외 임신과 관련한 증상들도 없어서 임신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매체는 ‘임신거부증’으로 인해 영국의 임산부 450명 중 1명이 임신 20주까지 임신 사실을 모르고, 2500명 중 1명은 분만 시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임신거부증은 일반적으로 임신 경험이 없는 젊은 여성이나 폐경기를 겪었다고 생각하고 피임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특히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있거나 불규칙한 월경주기를 가진 여성은 늦게 까지 임신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 홈볼트 주립대 비르쵸우 크리니쿰 캠퍼스 산부인과 연구진들이 임신거부증 유병률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995년~1996년 독일 내 분만 사례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475건 중 1건에서 임신거부증이 확인됐다. 

한편, 산모와 아이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신적 문제에 ‘우울증’을 빼놓을 수 없다. 산모에게 나타날 수 있는 우울증에는 주산기 우울증과 산후우울증이 있다. 그 중 산후 우울증은 산후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의 갑작스러운 호르몬 변화와 출산 및 육아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김 교수는 “출산과 양육이라고 하는 스트레스와 호르몬의 변화를 주된 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출산 4주 이내에 불안정한 모습, 우울한 기분, 슬픔, 심한 감정 변화,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 불안, 초조,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본인과 아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양육에 대해 심리적 중압감을 심하게 느끼면 산후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후우울증의 진단 기준은 일반적인 우울증의 진단 기준과 동일하다”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통해 증상에 대한 병력을 듣고 검사 및 치료를 진행한다. 다만, 주산기 우울증에서는 태아, 신생아 및 영아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때문에 약제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의 권고에 따르면 인지행동치료(CBT)와 대인관계치료 등 상담개입이 현재까지 시행할 수 있는 최선의 개입”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산후우울증을 비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식은 오히려 우울증의 치료나 개입을 가로막는 장애가 된다”고 강조했다. 

suin92710@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