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쓸고 닦고...병원 청소노동자 쉴 곳은 계단·창고뿐

병원 청소노동자 48% “휴게실 없다”
환풍기 없고 악취 고충… 미세먼지·CO2 기준치 초과 사례도

기사승인 2021-11-17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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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쓸고 닦고...병원 청소노동자 쉴 곳은 계단·창고뿐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춘숙·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2021 병원 청소노동자 휴게실 실태 증언대회’에서 병원 청소노동자 김노동(가명)씨가 증언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종일 쓸고 닦는 청소노동자에게 허락되는 것은 겨우 인당 하나씩 주어지는 사물함뿐입니다. 새벽같이 출근해 일하다가 폐기물 박스를 깔고 계단 밑에 누워 쉬는 사람의 심정을 아십니까? 사람들은 저희를 필수노동자라고 합니다. 필수노동자가 숨 쉬며 일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세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2021 병원 청소노동자 휴게실 실태 증언대회’에서 병원 청소노동자 김보건(가명)씨는 열악한 휴게공간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소재 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그는 휴게 시간마다 지하의 폐기물 보관장소에서 쉰다. 계단 밑, 엘리베이터 앞, 5평 남짓 탈의실이 김보건씨와 600여명의 동료들에게 허용된 공간이다. 김보건씨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휴게시간에 앉아서 물 한모금 편히 마실 수 있는 공간, 환풍이 되는 탈의실을 바란다”고 말했다.

김보건씨에 이어 증언에 나선 김노동(가명)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다. 오전 6시30분 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하며, 점심시간을 포함헤 1시간30분 내외 무급 휴게시간을 가진다. 김노동씨는 “동료 90명이 사용하는 10평 크기의 휴게실은 지하주차장 한복판에 있고, 환풍기와 에어컨은 고장 나 작동하지 않는다”며 “샤워실은 물론이고 손을 씻을 세면대도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김노동씨는 “동료들 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자가 발생해 수십명이 격리되는 일이 있었다”며 “이후 병원 측에서 휴게실을 분리해주기는커녕, 아예 폐쇄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 측 항의로 휴게실은 다시 개방됐지만, 이전보다 개선된 사항은 없었다”며 “동료들은 감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휴게실 대신) 병원 각 층의 오물처리실에서 휴게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병원 청소노동자에게 휴게공간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열악한 휴게공간에서 곤욕을 치르는 이들은 김보건씨와 김노동씨 뿐만이 아니다. 이날 보건의료노조가 공개한 9개 병원 청소노동자 휴게실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397명 중 ‘휴게실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189명(48.1%)에 달했다. 응답자의 82.7%는 휴게실 면적이 좁다고 답했으며, 비좁은 휴게실 대신 창고(23.2%), 계단 밑(22.2%), 복도(9.9%), 기타 작업장·청소도구 보관실·직원식당·공원(35.8%) 등을 전전한다고 토로했다.
새벽부터 쓸고 닦고...병원 청소노동자 쉴 곳은 계단·창고뿐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청소 노동자들이 사용 중인 엘리베이터 앞 휴게 공간.   보건의료노조 제공

휴게실이 있어도, 편하게 이용할 수 없는 환경인 사례가 적지 않았다. 조사에서 ‘휴게실에서 냄새가 나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64%로 파악됐다. 환풍시설이 없다(44.1%)거나, 냉방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다(16.1%)는 응답도 나왔다. ‘남녀 공간이 분리된 휴게실이 없다’는 응답은 11%로 집계됐다. 휴게실이 탈의실, 수면실로 통용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불편이 클 수밖에 없다.

열악한 휴게실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도 컸다. 보건의료노조가 일부 병원의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에서 공기질 측정검사를 실시한 결과, B병원의 휴게실 미세먼지 수치는 35.5㎍/m³로 기준치(35㎍/m³이하)를 초과했다.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1247~2839ppm으로 기준치(1000ppm이하)를 크게 웃돌았다. 휴게실이 지하 또는 주차장에 위치하고, 창문이나 환풍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게실에 대한 규정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 39조에 의거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명시됐다. 아울러 해당 조항에는 휴게시설을 ‘분진 발산 장소, 유해물질 취급 장소와 격리된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이는 전 사업장에 적용되는 조치로,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업장 내 휴게공간은 1인당 최소 6㎡의 면적, 냉난방기 및 환기설비 등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한다. 

하지만 이들 규정과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 실정이다. 조진영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휴게시설은 노동자의 안전은 물론, 인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법률이 사각지대 없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보다 명확히 명시된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휴게시설 설치에 있어 현장 노동자가 참여해 (사측과)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