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찾는 청년이 늘고 있다 [속앓는 20대①]

“취업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까지”…20대 우울증 환자, 5년새 127%↑

기사승인 2022-12-05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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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 한 대학교수가 낸 책이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적이 있다. 그로부터 십 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사회가 청년의 아픔을 대하는 태도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청춘의 고민을 여전히 자연치유 될 성장통쯤으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 마음병을 앓는 20대가 크게 늘었다. 
우리사회가 청년의 심적 고통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곪고 있는 청년들의 상처를 세심하게 어루만져주길 희망한다. 그런 마음으로 [속앓는 20대] 4편을 준비했다. <편집자 주>

정신병원 찾는 청년이 늘고 있다 [속앓는 20대①]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 공무원 시험 준비 3년차인 박유진(가명·25)씨는 최근 원형탈모가 생겨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는 진단을 듣고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그는 “공무원 시험공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게 몸으로도 나타나니 무서울 지경”이라며 “마음의 병이 깊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신과 진료도 함께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청년층의 정신건강 상태가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 불안증, 강박증 등을 호소하며 정신병원을 찾는 20대가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최근 5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우울증 환자 수는 17만7166명에 달한다. 5년 전인 2017년 7만8016명에 비해 127.1% 급증한 수치다. 불안장애를 앓는 20대 환자도 크게 늘었다. 2017년 20대 불안장애 환자 수는 5만9080명이었지만, 5년 사이 11만351명으로 86.8% 증가했다. 정신과 진료를 기피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신병원 찾는 청년이 늘고 있다 [속앓는 20대①]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좁은 취업문, 고용불안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취준생인 임혜원(가명·26)씨는 “영어는 자신이 있었는데, 원하는 토익 점수가 나오지 않아 취업을 못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커졌다. 토익 점수만 생각하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며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진정하는 방법을 알게 돼 스스로 다독이며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도한 직장업무, 잦은 야근,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으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한 청년도 있었다. 

박은아(가명·29)씨는 “원하는 기업에 입사했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계속 몸을 혹사시켰다. 잦은 야근으로 수면 시간이 부족해 성격까지 예민해져 대인관계도 엉망인 상태”라며 “입버릇처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단 말만 하다가 어느 순간 종료 버튼을 누르면 인생이 끝나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행동으로 옮기려 한 적도 있다. 가족 권유를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간 불화, 대인관계 문제 등도 청년층 마음을 멍들게 하는 요인이다. 윤가인(가명·23)씨는 “대학 신입생 때 나를 좋아한다며 따라다니는 학생이 있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증세가 심해졌다”며 “어느 날은 택배상자가 너무 크게 느껴져 호흡이 곤란해지기도 했다. 청소업체를 불러 택배상자를 치워달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현재는 정신과 약을 먹으며 치료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 간 불화와 연애 문제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방윤석(가명·29)씨는 “출근하려면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5시까지 잠을 못 잤다. 밤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너무 우울하고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더는 못 견딜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고 밝혔다. 

백명재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제로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20대 환자가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대인관계가 단절됐거나 경제가 어려워진 요인 등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우울증 유병률 자체가 증가했다기 보단 정신과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조성우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의무이사도 “젊은 세대에서 독특하게 볼 수 있는 현상으로는 청소년에서 성인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부모와의 심리적 독립을 획득하기 위한 갈등이 많다”며 “부모와의 외적 갈등 뿐 아니라 스스로도 의존과 독립 사이에서의 양가감정으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인관계에서 자기주장을 펼치는 데에 어려움을 보이기도 한다. 직장에 취업 후 업무와 조직생활의 적응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우울, 불안, 스트레스에 대한 해소 방법을 습득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식인 폭식, 음주, 자해와 같은 충동 조절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김은빈 박선혜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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