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어 : 덕후 [2023 연말결산]

기사승인 2023-12-16 1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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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하던 한 해가 끝나갑니다. 올해도 여러 콘텐츠가 빛을 봤습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비롯해 SBS ‘모범택시2’ 등 복수극 장르가 인기를 얻었죠. K팝 가수들의 빌보드 진격은 올해도 여전했습니다.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 MBTI와 관련한 ‘밈’도 돌았고요. 침체기에 빠졌던 극장가는 N차 관객에 힘입어 다시 일어설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말들은 무엇일까요? 쿠키뉴스가 올해의 단어 네 가지를 꼽아 2023년을 돌아봅니다.


올해의 단어 : 덕후 [2023 연말결산]
올해 큰 인기를 끈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주인공 송태섭. NEW 

사랑 앞에서 무력해지는 건 누구보다도 진심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열성적인 팬, 이른바 ‘덕후’의 마음은 활짝 열린다. 이들은 지금 가진 애정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영원을 믿으며 주저 없이 ‘덕질’에 뛰어든다. 덕후에게 불연속적인 미래는 두렵지 않다.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기 위해 지갑을 활짝 열고 모든 마음을 쏟아붓는다.

올해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이 같은 덕후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애니메이션 등 비주류로 여겨지던 서브컬처(하위문화) 팬덤은 침체기를 겪던 극장가에 숨통을 트이게 했다. 지난 1월4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대표적이다.

CGV가 추산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N차 관람 비중은 20.5%(이하 14일 기준)에 달한다. 올해 또 다른 히트작인 ‘엘리멘탈’(감독 피터 손)이 6.8%,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7%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너의 이름은’·‘날씨의 아이’ 등으로 굳건한 팬덤을 보유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N차 관객 비중이 10.9%일 정도로 인기였다. 유명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의 N차 관객 비중(10.5%·3월 기준)과 비슷한 수치다. 서지명 CGV 홍보팀장은 쿠키뉴스에 “팬덤 중심으로 이른바 덕질 문화가 확산하고 영화를 소장, 몰입하는 소비문화가 마련됐다”고 짚었다.

올해의 단어 : 덕후 [2023 연말결산]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응원 상영회 현장. NEW·에스엠지홀딩스㈜

서브컬처 팬덤의 규모가 커지면서 오프라인 행사 역시 활발히 열리고 있다. 그 동안 이 같은 행사가 K팝 팬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서브컬처 팬덤 역시 같은 문화를 향유한다. K팝·애니메이션·게임·스포츠 등 각 분야 사이 덕후의 이동 및 교류가 활발해지며 전 영역으로 확산돼서다.

오프라인 행사는 온라인 소통과는 다른 범주의 결속력을 다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톡회와 생일카페 등이 대표적이다. 덕톡회는 ‘최애’ 및 덕질 관련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자리다. 생일카페는 최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카페 등 공간을 빌리는 행사다. 사진 전시부터 굿즈 증정, 프레임 사진 촬영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마련돼 있다. 지난 7월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주인공 송태섭의 생일을 맞아 지하철역 전광판 광고와 생일 카페, 전시회, 응원상영회 등 각종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인기 웹툰 ‘가비지 타임’ 역시 주요 등장인물의 생일 카페 및 행사가 활발하다.

이 같은 행사는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대체로 높다. 교류를 통해 ‘덕심’을 키울 수 있어서다.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주제로 덕톡회에 참여한 직장인 김영서씨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히 애정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송태섭의 팬이 된 이모씨는 지난 7월 팬덤 내에서 자체 기획한 송태섭 생일 전시회를 관람했다. 이씨는 “그림 전시를 둘러보며 최애를 향한 마음이 더욱 진해졌다”면서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좋았다”고 돌아봤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비대면이 일상이던 팬데믹을 거치며 소통을 향한 열망이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큰 규모의 행사가 아니어도 이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자리는 팬덤을 가리지 않고 더욱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