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전부 ‘서울행’ 원하면 어쩌나”…‘이재명 헬기상경’에 의료계 근심

부산대병원도 치료 가능한데…서울대병원으로 ‘상경 치료’
응급의학회 이사 “지방 응급의료 무시한 것”

기사승인 2024-01-05 05: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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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전부 ‘서울행’ 원하면 어쩌나”…‘이재명 헬기상경’에 의료계 근심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도 서울 대형병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환자들이 많다. 이번 사건을 보고 일선에 있는 의료진들은 ‘앞으로 환자들이 전부 서울대병원으로 옮겨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걱정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인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한 직후 부산대병원에서 응급헬기를 통해 서울대병원으로 ‘상경 치료’를 받은 것을 두고 의료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에게 지역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앞서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일 이 대표가 서울로 이송되기 전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응급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목은 민감한 부분이라 후유증을 고려해 (수술을) 잘하는 곳에서 해야 할 것”이라며 “이 대표 가족들이 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칫 가족들이 원하면 전원이 가능하거나 서울대병원만이 수술을 ‘잘하는 곳’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문제가 됐다. 

이 대표가 서울대병원으로 상경 치료를 받은 것을 두고 의료계는 걱정이 앞선다. 비수도권과 서울의 의료서비스 격차가 나는 것처럼 해석할 여지가 있는 탓이다. 또 응급의료 절차에 대한 오해의 소지도 다분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교수는 “피습 현장에서 최종 치료가 가능한 지역의 권역외상센터까지 소방 119구급대는 헬기까지 사용하여 신속히 이송했고,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도 바로 진료를 시작했으니 여기까지는 해당 지역의 응급의료체계가 올바로 작동했다”면서 “이후 ‘잘하는 곳’이라고 표현한 서울대병원으로 이전한 건 지역 응급의료체계를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산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도 최종 치료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부산에서도 충분히 수술이 가능한데, 헬기를 타고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모습이 지방 응급의료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질타했다.

응급의료체계의 절차를 무시했다고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병원 전원은 유력 정치인이라 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보통 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못 한다고 했을 때, 가능한 인근 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응급의료체계가 있다”며 “부산대병원이 안 되면, 인근의 부산백병원·동아대병원 등을 알아보고, 그 다음 대구, 울산에 위치한 병원을 본다. 이러한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병원을 옮기는 건 의료진의 의학적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호자가 원한다고 모든 경우 전원이 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지금도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을 보내달라고 한다. 만약 서울로 보내다가 가는 길에 심정지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이런 식으로 지역의 응급의료체계를 무시하고, 흔들어 버리고, 보호자가 원하는 대로 이송하고 전원하게 되면 향후 우리의 응급의료체계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겠나”라며 “그 결과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국민”이라고 호소했다. 

부산광역시 의사회도 4일 입장문을 내고 “환자의 상태가 위중했다면 당연히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부산대병원에서 수술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편으로 연고지 종합병원으로 전원했어야 마땅하다”면서 “그러나 (이 대표는) 전국 최고 수준의 응급외상센터에서 모든 수술 준비가 다 됐음에도 병간호를 핑계로 몇 시간을 허비해 가며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정 최고위원은 ‘잘하는 병원에서 해야 한다’며 의료기관을 서열화하고 지방과 수도권을 ‘갈라치기’했다. 이러고도 민주당이 지방의료 붕괴와 필수의료 부족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지역의료계를 무시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짓밟아버린 민주당의 표리부동한 작태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장도 지난 2일 자신의 SNS에 “국내 최고의 권역외상센터인 부산대를 놔두고 권역외상센터조차 없는 서울대를 가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그는 “이번 일은 응급 상황에서 전문가인 의료진 의견을 무시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결정을 내리며, 의료진은 따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환자가 무조건 서울 그것도 ‘빅5’로 향하는 우리나라 의료 전체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한솔 강원도 속초의료원 응급의학과장 역시 SNS를 통해 “본인이 다치면 ‘서울대(병원) 가자’라면서 지방의료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된다”며 “지역대학 병원은 무시하면서 본인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병원으로 119헬기타고 이송한다”고 비꼬았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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