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뜬 60년 지기…“우리네 삶이 ‘소풍’이죠”

-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나문희와 김영옥
- 1960년대를 풍미하던 외화 더빙의 귀재들… 나란히 연기로
- 60년 배우 인생을 돌아본 감회와 ‘소풍’에 담은 이야기는

기사승인 2024-02-12 06: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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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 뜬 60년 지기…“우리네 삶이 ‘소풍’이죠”
영화 ‘소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60년 만에 고향인 남해로 떠나는 두 친구의 이야기.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은 두 80대 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우리나라에서 인생과 자식에 치이는 노인들은 어디에나 있다. 익숙한 이들에게 배우 나문희와 김영옥 역시 공감했다. ‘소풍’의 두 주인공, 은심과 금순을 각각 도맡은 이유다.

나문희와 김영옥을 지난 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인 두 배우는 극에서 평생 친구인 은심과 금순으로서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평생 헌신하던 며느리(MBC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7)), 엄마와 딸(MBC ‘여고동창생’(1976)), 언니와 동생(MBC ‘내가 사는 이유’(1997)), 딸의 친구와 친구의 엄마(tvN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등 세기를 넘나들며 다양한 관계로 만난 두 사람. 그럼에도 친구로서 등장한 작품은 거의 없단다. 두 배우는 이 기회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차진 호흡을 자랑한다. “찍어보지 않아도 궁합이 맞을 거란 걸 알았다”(나문희)는 확신과 “오래도록 함께 호흡한 친구와 60년 넘는 우정을 연기해 좋았다”(김영옥)는 만족감은 덤이다.

스크린에 뜬 60년 지기…“우리네 삶이 ‘소풍’이죠”
‘소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60년 인연이 스크린으로…“‘소풍’은 우리네 이야기”

둘 사이 인연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MBC 성우 1기로 함께 데뷔한 두 사람은 “외화 더빙의 귀재”(나문희)로 불렸다. 마릴린 먼로 목소리를 전담하던 나문희와 소년 목소리 연기의 대가로 꼽히던 김영옥.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언니인 김영옥이 먼저 손을 내밀자 나문희가 기꺼이 잡았다. 가족처럼 지내던 이들은 1970년대부터 나란히 연기에 발을 들인다. 언제나 동반자 인생이었다. ‘소풍’에서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그러하듯 두 배우는 막역한 사이로 평생을 함께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속을 끓이는 은심과 금순을 연기하면서도 남 일이 아니란 생각이 눈물을 글썽이곤 했단다. 이들에게 ‘소풍’이 “우리네 모두가 겪고 공감할 이야기”로 통하는 이유다.

극에서 은심과 금순은 재충전을 위해 함께 고향땅을 밟는다. 과거 은심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와도 재회한다. 이들은 재개발과 관련해 반목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기고, 잊고 살던 지난날을 반추하며 회한을 나눈다. 서로의 건강이 악화된 걸 알고 서글퍼한다. 요양원에 머무르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너흰 이런 곳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침통해한다. 돈이 필요하다고 징징대는 자식들로 인해 분통도 터뜨리고 고민에도 빠진다. 나문희와 김영옥은 ‘소풍’에서 자신들의 삶을 느꼈다.

“내 나이에 맞는 작품이에요. 줄곧 자신감을 가지려 했어요. 장면마다 감정을 이입했죠. 어느 순간부터 이건 연기가 아니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우리의 삶을 대사로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나문희)

“늙은이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미혼·기혼이나 젊은이·노인 모두가 자기 이야기로 느낄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한 것들을 눈여겨 봐주면 좋겠어요. 그 역시도 우리네 이야기니까.”(김영옥)

스크린에 뜬 60년 지기…“우리네 삶이 ‘소풍’이죠”
‘소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스크린에 뜬 60년 지기…“우리네 삶이 ‘소풍’이죠”
‘소풍’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마음 파고들고, 나를 내던지고…대배우의 연기론

연기 인생만 50년을 훌쩍 넘긴 노련한 두 배우는 이제 연기가 제 삶 같다. 김영옥은 “이젠 연기가 자동발생적으로 나온다”면서 “요즘은 연기를 실감 나게 한다고들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물을 보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진짜 연기”라는 지론을 내놨다. ‘소풍’ 역시 그런 정신으로 임했다. 김영옥은 극에서 난처해하는 모습만으로도 관객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는 “앞으로 영화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벌써 추억이 된 ‘소풍’이 잘 되길 바란다"고 염원했다.

나문희는 “연기할 때마다 요술봉이 생기는 듯한” 마음이 샘솟는다. 단순히 외운 대본을 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으로 변신하는 기분을 느껴서”다. ‘소풍’에서도 그랬다. 스스로에게 반한 장면들이 있을 정도다. “연기가 아닌 실제의 내가 담긴 순간들이 있다”고 말을 잇던 나문희는 “내가 이만큼이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며 싱긋 웃었다. 전성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다는 기자 말에도 “그렇죠? 아직까지도 역시나 그래 보이죠?”라며 화사하게 웃었다. 두 대배우의 눈빛은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이다가도 윤슬처럼 반짝였다.

“조금만 더 젊었으면 싶지만 이젠 늙은 것도 와닿지 않아요.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안 늙는 게 인생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즐겁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리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김영옥)

“철없는 말이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연기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연기가 좋고 언제나 새로워요. 이번에도 나 자신을 작품에 데려다 놨어요. 은심이와 금순이 그리고 ‘소풍’은 나문희와 김영옥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소풍’을 보시고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길 바라요. 부디 모두가 건강하길!”(나문희)

스크린에 뜬 60년 지기…“우리네 삶이 ‘소풍’이죠”
배우 나문희(왼쪽)와 김영옥. 롯데엔터테인먼트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