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떼니 30%대…누굴 위한 ELS 배상안인가”

금감원 홍콩 H지수 ELS 배상기준안 발표
배상기준안 계산해보니…“많아야 40%대”
가산 어렵고 차감 쉽게…“은행 내심 만족스러울 것”
“DLF 때보다 후퇴” 배상기준안 손질 목소리도

기사승인 2024-03-13 06: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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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떼니 30%대…누굴 위한 ELS 배상안인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홍콩 H지수(중국항셍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의 배상기준안을 내놨다. 가입자들은 배상기준안이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됐다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발표 하루 만에 배상기준안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사가 불완전판매를 했는지, 투자자들의 금융이해도와 ELS 투자 경험도에 따라 배상비율을 차등 책정하는 내용의 배상기준안을 11일 발표했다. 배상비율은 판매자별 요인(23~50%)에 투자자별 요인(±45%)을 반영한 뒤 기타 조정요인(±10%)을 접목해 결정된다.

금감원 “20~60% 대부분 분포할 것”

판매자별 요인에서는 판매사의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위반 여부에 따라 기본 배상비율을 20~40%로 정했다. 여기에 불완전판매를 확대한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고려해 은행은 10%포인트, 증권사는 5%포인트를 가중한다.

투자자별 요인은 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 보호 소홀, 자료 관리 부실 등 각 투자자에 대한 판매사의 절차상 미흡사항을 고려해 판매사 책임가중 사유를 배상비율에 가산(최대+45%포인트)하고, ELS 투자 경험(가입 횟수, 금액 등), 금융 지식수준 등 투자자 책임에 따른 과실 사유를 배상비율에서 차감(최대 -45%포인트)해 결정한다. 일반화하기 곤란한 내용은 기타 조정요인으로 반영한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가입자 대부분이 배상비율이 20~60%에 분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DLF의 배상비율로 20~80%를 제시했고, 6개 대표 사례에 대해서는 40~80%를 제안했다. ELS의 예상 배상비율은 이와 비교해 20%p 낮게 잡은 것이다. 또 배상비율 100%에 대해서는 “일방의 책임만 인정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다만 구체적 사례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떼니 30%대…누굴 위한 ELS 배상안인가”
투자자 차감 요인. 금감원

“은행 편드는 배상안” 15일 시위 예고한 가입자들

가입자들은 금감원이 제시한 배상기준안이 은행에 치우쳐 있다고 본다. 길성주 홍콩 ELS 피해자 모임 위원장은 12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금감원은 억울한 가입자가 없게 하겠다며 가입자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막상 배상기준안은 편파적”이라며 “가입자 귀책사유가 터무니없이 많다. 배상비율 차감은 너무나 쉽게 하고 가산되는 부분은 어렵게 만들어놨다. 누굴 위한 배상기준안인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길 위원장은 “예를 들어 예적금 가입목적으로 방문한 고객은 10%p가 가산되게 해놨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겠나”라며 “결국은 90%에 해당하는 재가입자는 가산을 못받고 아주 소수에 해당하는 최초가입자들만 가산받을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홍콩 ELS 피해자 모임은 오는 15일 서울 서대문구 농협 앞에서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많은 홍콩 ELS 가입자들은 배상기준안으로 계산해본 결과, 예상보다도 크게 낮은 배상비율이 나온다고 토로하고 있다. 노윤상 법무법인 정윤 파트너 변호사는 “의뢰한 고객들의 배상비율을 계산해본 결과, 대부분 30%대고 많아봐야 40%”라며 “은행들도 처음에는 우려가 컸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익스포저(위험노출액)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이번 안에 대해 내심 만족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아주 초고령자나 최초가입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배상비율이 50%를 넘기 힘들 것”이라며 “가입자는 불완전판매나 은행 귀책사유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결국 배상비율을 결정권을 은행에서 쥐고 있는, 은행에 유리한 구조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저것 떼니 30%대…누굴 위한 ELS 배상안인가”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배상기준안 발표 하루만에…“소비자, 피해자 입장에서 다시 만들어야” 

국회와 시민단체도 배상기준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과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ELS 분쟁조정 기준안은 2019년 DLF 사태 때보다 훨씬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금감원이 발표한 ELS 분쟁조정기준은 판매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책임은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책임은 과하게 반영했다”며 “한마디로 판매사 책임은 가볍게, 투자자 책임은 무겁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은행 공통 배상 기준이 DLF 25%에서 10%로 낮아진 점 △투자경험에 따라 차감하는 최대 비율이 DLF 10%, 라임 5%에서 ELS 25%로 높아진 점 △가입금액 및 수입 규모에 따라 차감하는 최대 비율이 DLF 10%·라임 5%에서 ELS 15%로 높아진 점 등을 들었다.

민 의원은 “‘노후 자금’, ‘전세자금’, ‘배우자 사망보험금’ 등 함부로 고위험 투자에 활용하기 힘든 자금임을 알면서도 은행의 신뢰도를 내세워 상품 가입을 강하게 권했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배상기준을 금융소비자, 금융피해자 입장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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