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큰 병원’ 없어야”…의료전달체계 개편 사활

복지부,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 개최
상급종합병원 환자 쏠림…“의료기관 종별 거버넌스 구축”
말로만 외쳤던 ‘의료전달체계’…“개념 정립부터 확실히”
“환자·의사·국민 모두 불편 감수해야 개혁”

기사승인 2024-03-16 06: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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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큰 병원’ 없어야”…의료전달체계 개편 사활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현장의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한다. 사진=임형택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현장의 혼란이 의료개혁의 불을 지폈다. 현재의 혼란은 대형병원이 전공의에 의지하고, 경증환자가 위급하지 않은데도 대학병원 응급실부터 찾는 등 잘못된 의료 이용 관행이 굳어진 결과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이번에야 말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전문의 중심의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개최한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이 논의됐다. 정부는 최근 전공의 이탈 사태에서 드러난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전달체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최수경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혁신센터장은 환자가 동네 병의원(1차병원)에서 병원급 의료기관(2차병원)을 거치지 않고 상급종합병원(3차병원)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구조가 의료공백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3차병원 환자 중 입원 환자 44%, 외래 환자 64%는 1·2차병원에서도 진료가 가능하다. 수도권에 의료 자원이 집중되는 현상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상급종합병원의 42.2%, 종합병원의 33%가 서울·경기에 몰려있다.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도 서울이 3.5명인데 반해 경북은 1.4명으로 두 배 넘게 차이 난다. 뇌혈관질환 사망비율은 서울 0.95명, 충북은 1.29명이다.

최 센터장은 “의료기관 종별 분류체계 기능에 대한 책임 부여가 제한적이고 지역 병원에 대한 지자체의 성과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며 “종합병원이 일정 요건을 달성한 경우 ‘지역 필수 우수병원’으로 지정·육성해 권역·지역 거점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지역 내 의료 자원 네트워크 총괄 기능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지역·필수의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료기관 종별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진료와 교육, 연구 중심으로 기능을 재편해 그에 따른 인증·평가와 수가, 예산 등을 지원하고 필수의료 전문의 중심의 2차병원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역 의료기관이 진찰, 예방, 진료 협력 등 지역에서 연결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의 중등증(중증과 경증의 중간), 경증 진료 감소에 따른 손실 보전도 뒷받침돼야 3차병원의 중증 진료, 연구 기능이 유지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외에도 그는 과다하거나 부적정한 의료 이용의 경우 본인부담률을 대폭 인상하는 방안이나, 지역·필수의료 분야 공동 수련과 인력 교류 활성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신 위원은 “의료사고특례법, 전공의 수련제도 개편, 국립대 의대 정원 확대, 진료보조(PA) 간호사 합법화 등 그동안 실행하지 못했던 정책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활발한 논의로 신속하게 추진되고 있다”며 “의료개혁의 장이 열렸다. 의대 증원 갈등 때문에 이 모든 논의가 묻히고 있는데, 빨리 갈등이 해소돼서 그간 말로만 외쳤던 의료전달체계 개선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묻지마 큰 병원’ 없어야”…의료전달체계 개편 사활
보건복지부가 15일 서울 코리아나 호텔에서 개최한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에서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이 논의됐다. 사진=신대현 기자


의료전달체계가 현장에 제대로 녹아들기 위해선 근거에 기반한 효과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됐을 때 얼마나 비용효과적이고 환자에게 이로운지 근거가 부족하다”며 “근거 축적과 함께 필수의료와 의료전달체계의 개념 정립부터 확실히 돼야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잘못된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고, 수차례 개선을 위해 관련 시범사업 등이 이뤄졌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거나 논의 단계에만 그쳤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메르스나 코로나19 등 감염병 유행 사태 때 잠시 전달체계가 정상화 됐지만 이후 과거로 회귀했다는 지적이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그동안 수많은 보건의료 정책들이 발표됐지만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고 논의에만 그쳐 시범사업도 실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이런 결과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고, 지자체는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정호 충북대병원 기회조정실장 역시 “의료개혁은 좋지만 지금부터 10년, 20년 뒤 성과가 나타날 정책만 추진해서 답답하다”며 “그러면 결국 개혁이 안 된다. 당장 손대야 할 것들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의료계와 의료기관의 노력만으로 의료개혁은 완성되지 않고 국민들의 참여와 희생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안 대표는 “정부는 환자들에게 지금처럼 자유롭게 병원을 선택하지 못하고 비용은 더 부담해야 한다고 전해야 하고, 의사에게는 자유롭게 환자를 보지 못하고 소득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며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으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환자와 의사, 국민 모두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의료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업이라며 지역 연결형 의료전달체계를 완성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는 것에 의료계가 공감대를 갖고 빨리 논의의 장으로 합류했으면 한다”며 “의료개혁을 통해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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