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미룬 책임, 정부가 져라”…커지는 ‘국고 투입’ 요구

기사승인 2024-03-20 11: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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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미룬 책임, 정부가 져라”…커지는 ‘국고 투입’ 요구
연합뉴스

더 내고 더 받기와 조금만 더 내고 그대로 받기. 국민연금 개혁안이 두 가지로 압축되자, 비판이 거세다. ‘재정 안정화’, ‘소득 보장’ 두 의제 사이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탓이다. 이에 국고를 투입해 재정 안정을 도모하면서도 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9일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 등에 따르면 공론화위는 지난 8~10일 근로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등 각 이해관계 집단 36명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두 가지 안을 내놨다. 최종 개혁안은 500명 시민대표단 토의와 공론화위, 특위 차원의 논의를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의제숙의단이 좁힌 두 가지 개혁안 모두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올려야 한다는 데 대해선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소득대체율(받는 돈) 변동 폭에 따라 보험료율을 얼마나 올리느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1안은 현행 소득대체율인 40%에서 10%p 올린 50%로 인상하고, 보험료율을 13% 올리는 내용이다. 2안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수준인 40%로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12%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은 “1안은 소득 안정에, 2안은 재정 안정에 방점을 뒀다”고 짚었다. 

이를 두고 기금 고갈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고갈 시기를 7~16년 정도 늦추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재정계산위)가 제시했던 연금개혁 목표는 20세 가입자가 평균 수명(2070년 91.2년)에 도달하는 시기까진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향후 청년들은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이에 적어도 보험료율을 15%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노후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데 양극단에 치우친 선택지만 제시했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 연금특위 자문위원인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에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며 “두 가지 안은 극단적인 양자택일이라 선택하기가 어렵다. 다양한 스펙트럼 중 재정 안정과 소득 보장을 달성하는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연금개혁 미룬 책임, 정부가 져라”…커지는 ‘국고 투입’ 요구
국민연금공단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KDI도 “재정 투입해야”…정부 지원 강화될까 

연금개혁 논의가 진행되면서, 국고 투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시한 연금개혁안도 정부 지원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KDI는 KDI 포커스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이강구·신승룡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을 통해 국민연금 지속가능성을 위해 신(新)연금과 구(舊)연금으로 분리하고, 구연금에 대해선 일반재정 609조원을 투입해 미적립 충당금(재정 부족분)을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간 정부가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뤄 재정 부담이 늘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우창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이 늦어져 늘어난 부담은 국민이 잘못해서 생긴 게 아니다. 권한이 있는 주체인 정부, 국회가 재정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국가 재정을 GDP의 1% 정도만 투입해도 앞 세대의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개혁이 5년 지연될 때마다 균형상태 부담이 GDP 0.5%씩 증가했다. 2007년 개혁 이후 16년간 개혁이 지체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가 22조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일반 재정에서 국내 총생산(GDP)의 1% 정도인 22조원가량을 투입하면 보험료율을 3% 올리고, 기금 운용수익률 1.5%p 상향 조정만 해도 재정 안정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기 위해선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소득대체율 인상은 국민이 받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에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며 “보험료율 15% 인상, 기금 운용 수익률 6%p 제고, 정부 재정 GDP 1% 투입을 하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금개혁 미룬 책임, 정부가 져라”…커지는 ‘국고 투입’ 요구
근로소득세 및 종합소득세의 연령대별 분담 현황.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고를 투입하면 세대와 소득계층 간 형평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적연금강화행동

국고를 투입하면 세대와 소득계층 간 형평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재정계산위 위원이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고를 투입하면 자연스럽게 세대별, 소득계층별 차등 부담이 실현된다”며 “조세 부담을 연령대별로 구분해 보면 40대 이상이 총근로소득세 납세액의 78.9%를 부담한다. 소득분위별로도 상위 10%(10분위)가 총근로소득세의 73.1%를 납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해외 공적연금과 비교해도 한국의 재정 지원은 낮은 편이다. 국내외 공적연금 지출 현황을 살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정부 예산 대비 18.4%, GDP의 7.7%를 투입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 예산 대비 9.4%, GDP의 2.8% 투입에 그친다. 다만 OECD 평균 연금보험료 비율은 18.2%, 한국은 9.4%로 낮은 편이다.

정부는 국고를 투입하는 것과 관련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정부는 줄곧 국민연금의 수익자부담 원칙(급여에 필요한 비용을 수익자에게 징수)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11일 국정감사에서 “기금에 국고를 투입하면 다른 쪽으로 가야 할 돈이 줄어든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이어 “현재도 연금에 크레딧 지원 등 정부 재정으로 투입되는 예산이 있기 때문에 국고 지원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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