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죠” [꺾이지 않는 청춘③]

5집 앨범 가수 & 미디어회사 대표 인터뷰

기사승인 2022-12-17 0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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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30 청년들의 삶은 고달프다. 급등하는 물가와 취업 한파는 청년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힘든 시기에도 꺾이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청년들이 있다. 쿠키뉴스가 생계형 알바 시장에 뛰어든 2030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주>

“하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죠” [꺾이지 않는 청춘③]
가수활동 당시 무대 위에서 공연 중인 김씨.   사진=본인 제공

대구에서 나고 자란 대구 토박이인 김승훈(가명·34)씨. 장난기 넘치는 개구진 성격의 김씨는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개그맨을 꿈꿨다. 각종 장기자랑은 물론 반에서 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김씨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김씨도 자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데 큰 기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방문한 음반 가게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한 가수의 베스트 테잎을 듣는 순간 귀에 확 꽂혔고, 구매한 그 테잎을 늘어지도록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개그맨에서 가수로 꿈이 바뀌었고 작사·작곡을 시작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방에서 3시간 이상은 무조건 노래 연습을 했다.

그렇게 가수의 꿈을 키워오던 김씨는 스무살 때 모 대학 방송연예과로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넉넉치 않은 가정 형편에 용돈도 받지 않고 자란 그는 대학 등록금을 직접 벌어야 했다. 그러다 백화점 카드 회원을 모집하는 알바를 알게 됐고,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어 일을 시작했다.  

“하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죠” [꺾이지 않는 청춘③]
가수의 꿈을 키웠던 고등학생 시절.   사진=본인 제공

절박함으로 뛰어든 카드 영업

김씨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득을 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낯선 건물 어디든 들어가서 영업을 해야했기에 항상 긴장감과 두려움을 달고 살았어요. 더군다나 백화점 카드 발급을 고객에게 설득시키고 개인정보를 받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았죠. 지금은 개인정보를 받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주민번호, 민증 발급일자 등 개인정보를 다 받았어야 했어요.”

당시 근무하던 곳에는 규칙이 있었다. 모집 건수를 10건 이상 달성하면 인센티브 1만원, 20건일 경우 2만원이었다. 김씨는 인센티브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상황이었고 그만큼 절박함도 컸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들 앞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췄다. 

“초반 1분 내에 영업멘트로 주목을 끌어야 했기에 분위기를 잡는 게 상당히 중요했죠. 처음 일주일 정도는 하루에 3건도 못해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다른 일도 알아봤지만 오기가 생겨서 계속 근무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러다 어느 날부터 분위기를 타더니 10건 이상씩 꾸준히 하게 됐어요. 하루 1만원을 식비, 교통비 등에 보탰고, 거기에 더해서 걷는 양이 늘어나니 몰라보게 살이 빠지더라고요.”

카드 모집 알바를 하며 터득한 게 많다는 김씨는 그만큼 인생 경험치도 쌓였다. 

“어떤 일을 하든 제안을 하고 설득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이 기본이라는 걸 깨달았죠.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기운을 주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예전에는 막연히 두렵거나 무서우면 회피하고 했었는데 알바 경험 이후로 오히려 더 부딪히는 편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실패하거나 안좋은 일을 빨리 털어내려는 습관이 생겼어요. 실패를 거울로 삼되 그 분위기를 빨리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김씨는 대학 방학기간마다 쉬지 않고 알바를 했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시간을 내서 오디션이나 가요제, 음악과 관련한 일을 절대 놓지 않았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2014년 말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고 한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게 됐고 본격적으로 가수 준비를 했다. 나름 앨범도 냈고 공중파 방송 출연도 하면서 꿈을 이루는 듯 했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가수였던 김씨에게 당장 먹고 사는 문제는 여전히 시급했다. 집을 마련할 여력이 안돼 3년 동안 서울 내 지인들 집을 전전하며 얹혀 살았다.

“집 없는 생활고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많이 힘들었죠. 서울 생활을 하면서 카드빚만 늘어갔고 도저히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아예 고향에 가서 다시 시작하자라는 마음으로 대구로 내려오게 됐어요.”

“하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죠” [꺾이지 않는 청춘③]
고향으로 내려온 김씨는 클럽 청소로 생계를 이어갔다.   사진=본인 제공

클럽 청소, 스카웃 제의도

막상 고향에 내려왔지만 돈이 단 한 푼도 없었다. 1년 정도는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했다. 노래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무작정 알아봤고, 그래서 찾은 일이 클럽 청소였다. 2018년부터 시작한 일은 5년 동안 이어졌다. 

“클럽 두 군데서 일을 했었어요. 일반적으로 두 곳이면 6시간 정도 소요가 되는데, 전 3시간 안으로 끝내는 편이에요. 클럽이라던지 주변 식당가, 유흥가 매장 청소는 대부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 빠르죠. 매장 대표들과도 소통이 빠르기 때문에 큰 잡음 없이 일을 하는 게 가능하고요.”

“보통 청소하시는 분들은 정말 기본만 하고 시간 때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전 주기적으로 대청소 등 필요한 부분들을 먼저 제안했고 업주들에게 인정도 받아 월급 인상도 여러 번 해줬어요. 어느 정도 입소문이 퍼졌는지 여러 군데에서 스카웃 제의도 들어오고 그랬어요.” 

물론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청소를 끝내고 아무도 없는 클럽 안에서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자체가 좋았다. 행사나 공연을 앞두고 연습 공간이 필요하면 매장에서 연습하라고 배려도 해줬다. 

“청소를 하면서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었고, 음악에 대한 의지도 더 불타올랐어요. 건강을 위해 운동한다고 생각하니 재미도 있었고요. 청소를 하는 만큼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보니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김씨는 1년 365일 단 하루의 휴무도 없이 일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벗어나야겠다고 늘 다짐했다. 막막한 앞날이 걱정도 됐지만 불안함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점점 현실을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큰 건 사실이에요. 아직 꿈을 먹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한 해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겁이 나기도 하고요. 아주 가끔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내가 과연 맞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렇지만 불안만큼 자신을 갉아먹는 것도 없거든요. 긍정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 않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죠” [꺾이지 않는 청춘③]
5년간 모아둔 돈으로 콘텐츠 회사를 창업.   사진=본인 제공
창업의 꿈 이룬 30대 청년

그렇게 5년 간 클럽 청소를 하며 모은 돈으로 김씨는 지난 10월 작은 미디어콘텐츠 회사를 창업했다. 음악일을 마음껏 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고 다방면으로 가능한 방법을 알아봤다. 그러다 정부와 협력해서 진행하는 창업 루트를 알게 되면서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뛰어들었다.

우선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시스템 환경과 플랫폼을 구축해 나갔고 초기에 인력이 없을 것을 대비해 직접 동영상 촬영과 편집 기술도 배웠다.

유튜브 채널도 활발히 운영 중인 그는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필요한 건 본인의 의지이고 목적이지 일의 종류가 아니에요. 저도 청소부터 시작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틈틈히 하고 싶은 노래와 컨텐츠 제작 등을 했더니 어느덧 5집 앨범을 낸 가수에 미디어콘텐츠 회사 대표가 돼 있더라고요. 끊임 없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닌 결과죠. 아직 본인의 꿈을 찾지 못한 청년이 있다면 가리지 말고 뭐든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없으니까요. 저도 이제 시작 단계지만 앞으로도 저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계속 나아갈 겁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