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 신청’ 마지막 날까지 대학·의대 이견…“2000명 넘을 듯”

기사승인 2024-03-05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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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신청’ 마지막 날까지 대학·의대 이견…“2000명 넘을 듯”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사진=임형택 기자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과대학 입학 정원 수요조사가 지난 4일 자정 마감된 가운데 증원 신청 총규모가 2000명을 넘을 것으로 점쳐진다. 일부 대학에선 총장과 의대 학장·교수·학생 간 갈등이 빚어져 당분간 조사 결과를 둘러싼 여진이 이어질 전망이다.

5일 교육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전날 밤 12시까지 각 대학의 의대 정원 수요를 접수하고 이날 오전 중으로 집계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사안의 중대성과 민감성 때문에 고심 끝에 밤늦게 신청서를 제출한 대학들이 적지 않아 정확한 신청 규모는 5일이 지나야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증원 신청 총규모는 정부가 앞서 늘리겠다고 밝힌 2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박성민 교육부 대변인 겸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수요 신청 규모에 대해 “지난해 수요조사(2151~2847명)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정부는 총선 전까지 의대별 정원 배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의료계는 연일 대학 총장들에게 증원 신청을 자제해달라고 촉구했지만 교육부가 “신청하지 않은 대학은 임의로 증원해 주지 않겠다”고 못 박은 만큼 거의 모든 대학이 증원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지난 1998년을 마지막으로 26년간 증원이 없었고, 수시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도 아니어서 대학가에선 이번이 아니면 언제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확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상국립대는 현재 76명에서 200명 규모로, 조선대는 125명에서 45명 추가한 170명으로, 단국대(천안)는 40명에서 100명 전후로 증원을 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 정원이 49명인 강원대와 동아대도 100명 안팎의 정원을 요청했다. 정원이 50명이 되지 않는 수도권 ‘미니 의대’들도 원하는 수요를 교육부에 전달했다. 의대 정원이 40명인 인하대와 가천대는 지금 정원의 2배 넘는 수준으로 증원을 신청했다. 울산대는 현 40명에서 110명을 증원해 총 150명 정원을 제출했다. 울산의대는 서울아산병원,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다.

경북대는 총장이 직접 공개적으로 증원 규모를 밝혔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4일 ‘제16차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현재 의대 110명 입학생을 140명 늘려 250명으로 교육부에 지원 신청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교육체제에서 230%를 늘리는 건데, 이렇게 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반발이 있어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홍 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110명의 정원을 250~300명으로 증원할 계획을 밝혔는데, 증원 추진에 반발하는 교수회 등과 갈등을 빚었다.

연세대도 경북대와 마찬가지로 의대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혀 막판까지 구체적 증원 규모를 결정하는 데 진통을 겪었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4일 취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의대 교수님들은 증원을 하는 게 여러 여건상 힘들지 않느냐며 증원하지 말 것을 대학 본부에 요청했다”며 “정부가 합리적으로 증원 규모를 검토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단 게 의대 교수님들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증원 신청’ 마지막 날까지 대학·의대 이견…“2000명 넘을 듯”
2월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연세대 의과대학 2023학년도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사진=임형택 기자


학내 갈등 폭발 조짐…교육 환경 질 의구심

증원 신청을 계속 만류해온 의대 교수·학장과 대학 총장 간 학내 갈등은 커질 전망이다. 의대 교수들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이공계열 인재를 매년 2000명씩 의사로 빠져나가게 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에 걸림돌이 되게 했다는 원성을 듣는 총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의대 학장과 의학전문대학원 원장들의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입학하게 될 신입생들에게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음은 물론 기존 재학생들에게도 부실교육의 여파가 미칠 것을 우려한다”고 발표했다.

의대생들도 마지막 수요조사 날까지 각 대학의 결정을 비판하며 철회를 촉구했다. 의대생들은 지난달 19일부터 휴학계 제출과 수업 거부 등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개강일인 4일까지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지난 3일 오후 6시 기준 5387명에 달한다. 실제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은 1만명이 넘지만, 정당한 절차와 요건을 지키지 않은 휴학은 집계에서 제외됐다.

각 학교별 의대생으로 구성된 의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TF)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각 대학본부와 총장을 향한 서신을 공개하며 의대 교수들과 학생들의 우려를 반영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중 가톨릭의대TF는 “내부 설문조사 결과 459명 중 94.3%의 학생이 ‘교육 환경을 고려했을 때 증원 이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며 “현실적인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증원 숫자를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유수 의대도 교육현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전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내 대학병원 신경과 A교수는 “저희 학교만 해도 현재 인원에서 10명도 늘릴 강의실이 없다”며 “갑자기 이렇게 증원을 하면 과연 각 학교가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능력들이 될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도 의학교육의 질이 하락할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4일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을 통해 “2000명 규모는 수용이 가능하다는 게 작년 의대별 수요조사와 현장점검을 통해 정부가 확인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 증원은 의료개혁에 필수적인 조건”이라며 “27년간 정체된 의대 정원을 더 늦기 전에 정상화해야 지역과 필수 의료를 살릴 수 있고,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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