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직전 ‘소아 진료’…숨길 열려면

기사승인 2024-03-21 06: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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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직전 ‘소아 진료’…숨길 열려면
저출산 등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의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소청과 전문의들이 중증 소아환자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임형택 기자

“소아청소년과 의료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무너지고 있다.” 신손문 부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청과의 현주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소아 진료를 보는 의사가 줄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 상황에서 소청과는 물론 소아외과, 소아심장, 소아응급 등 소아 세부·분과 전문의들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무너져가는 소아 의료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동네 병원 소청과 전문의들이 진료를 포기하고, 중증 소아환자를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 근무를 마다한다. 각 진료과별로 소아환자 치료에 특화돼 있는 세부·분과 전문의를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다. 병원당 1명만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아예 없는 병원도 수두룩하다. 

저출산, 저수가, 고위험, 법적 분쟁, 악성 민원 등 소아 진료를 기피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신규 의사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2020년 74%였던 소청과 수련병원 전공의 지원율은 2021년 38%로 급감한 이후 2022년 27.5%, 2023년 15.9%로 해마다 감소했다. 충원율 역시 2018년(101%)부터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다가 2020년 74.1%에서 2021년 38.2%로 반토막이 났다. 소청과 의사 부족으로 24시간 정상적으로 소아청소년 응급진료가 가능한 수련병원은 2022년 기준 전체의 36%에 불과하다. 

정부도 현 상황을 인식하고 소아 진료 강화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소아암, 소아외과 계열 처치와 수술료·마취료 등 소아 연령에 따른 가산 수가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소아 가산수가 적용 연령을 현행 6세 미만에서 상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재 13개 병원이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는 올해 연말부터 전년도인 2023년 손실분을 사후 보상하고, 올해 운영 상황에 대해선 내년 말에 보상할 예정이다. 소아진료 지역 협력체계 구축 시범사업은 상반기 안에 시작할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열고 “소아과뿐만 아니라 소아외과 계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지역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가 충분히 충원될 수 있도록 ‘신생아 집중치료센터 전문의 지역수가’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아 세부·분과 전문의, 끊김없이 보전해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아 진료의 미래가 어둡다’는 인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정부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놔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신손문 교수는 “개인 의원의 경영이 악화돼 폐업하거나 소청과 진료를 포기하고 피부미용이나 통증치료 등 다른 진료로 전환하는 의료기관이 증가하고 있다”며 “소청과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오직 건강보험의 요양급여에 의한 진료 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출생아 감소가 소청과 존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출생아 수가 감소하더라도 소청과 전문의가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며 “일차의료체계를 복구하고 상급의료기관 중심의 중증질환 진료체계의 재정립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네 소청과 병원 의사들이 적은 수의 소아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의원을 경영할 수 있도록 획기적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개원가나 병원에 봉직하고 있는 전문의들이 상급의료기관에서 소아전담전문의로 근무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특히 소아외과 전문의의 경우 수가 가산을 통한 지원만으론 인력 확보가 어려워 직접적 인건비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아외과는 소아의 수술을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외과의 세부 전문 분야다. 신생아의 항문 폐쇄, 식도 폐쇄 등 다양한 선천성 기형부터 탈장, 외상, 종양, 장기 이식에 이르기까지 소아 환자 처치에 특화돼 있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는 소아외과 의사는 약 5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는 “소아에 특화된 수련을 받은 외과 계열 전문의들이 이탈하지 않고 진료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소아의 생명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지역·권역 신생아 집중 치료센터나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기관에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필수적으로 확충되도록 제도화하고 직접적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소아 세부·분과 전문의들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보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 회장은 “소아 세부·분과 후임 전문의가 들어오기도 전에 자리를 지키던 의사들이 퇴직하면 명맥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된다”며 “인력이 순환되도록 강력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아동병원이 지역에서 소아 의료의 허리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최 회장은 “기존에 베이스가 갖춰져 있는 아동병원들을 육성해 일차의료와 중증의료의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재정 낭비를 줄이고 소아 의료인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길이다”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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