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현섭 기자] “알파고가 초반에 큰 실수를 했다. 난 지금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고 있다”(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
“알파고의 실수가 드디어 나오느냐”(가수 김장훈·바둑TV 제5국 객원해설)
처음엔 마땅한 대체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이 사람 저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걸 그대로 기사로 썼다. 그런데 마음 속 한 구석은 계속 찜찜했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다. 기계이다. ‘인공(人工)’은 사람이 만들거나 꾸며내는 행위, 혹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알파고는 사람이 만든 ‘도구’이다.
그런데 알파고가 실수? ‘부주의로 저지르는 잘못’인 실수는 인간(혹은 생명체)의 행위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고, 실수를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삼아 더 나은 결과로 발전시키고 창조해내는 것 또한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다.
다들 “실수” “실수”하는데 혼자 예민하게 굴고 있나 라는 생각에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영국 뉴캐슬대학의 방문교수(전산학과)로 가 있는,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이기도 한 문송천 카이스트(경영대학원) 교수에게 15일 밤(한국시간) 카카오톡을 보냈다.
“인간 바둑의 관점에서 이해 안 가는 수를 두면 알파고가 ‘실수’를 했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문 교수는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기계에선 실수라는 게 없습니다. 보유 데이터를 가지고 계산했더니 그런 수가 나온 것이지요. 중요한 건 계산과정의 시간적 최적성 차원에서 AI(인공지능)가 ‘확률’ 기반으로 처리하지 모든 경우의 수를 전수계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랬다가는 기계도 제한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말고 다른 SW(소프트웨어) 분야는 확률 기반으로 작동되지 않습니다. 이게 AI의 특수성입니다. OS(운영체계)나 DB(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는 확률 기반 연구 접근방식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컴퓨터의 기본인 ‘정확성’이 지켜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AI는 근원적으로 예측 분야에 해당한다고 봐야 맞으며 정확성을 놓고 다소 타협하는 한이 있더라도 AI 쪽에서는 그런 기조를 택하겠다는 뜻입니다. 실수도 아니고 오류도 아닙니다.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인 알파고의 수가 그 당시엔) 기계로서는 최선의 결과였던 거지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시작된 후 중계, 언론보도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알파고에 대한 ‘의인화’이다.
기술력이 생각보다 너무 훌륭했으니 그럴 만도 하긴 하다. 이세돌 9단 역시 제5국이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실력 우위는 인정 못하겠지만 (알파고의) ‘집중력’은 역시 사람이 이기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우린 누군가 주변이 시끄러운 것 등 외부 영향이 분명함에도 흔들림 없이 뭔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집중력이 좋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의 심리적 능력인 ‘집중력’이 기계(알파고)에게 있을 리가 없다. 이세돌 9단이 ‘흔들릴 수가 없는’, 오히려 기계의 전형적인 특성을 ‘집중력’이라고 ‘표현’한 것 아닐까.
바둑랭킹 사이트인 ‘고레이팅스(Goratings)’는 최근 알파고를 이세돌 9단을 세계랭킹 5위로 내려앉히면서 4위에 올렸고, 한국기원은 ‘명예’란 수식이 붙긴 했지만 알파고에게 ‘9단’을 수여했다.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와 176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무장된 알파고를 ‘머리와 가슴’으로 승부에 임하는 인간과 동일선상에 놓았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걸까.
다들 알파고라는 첨단 기술에 놀랐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알파고 때문에 인간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예상 못한 패배 후에도 응원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활짝 웃는 이세돌 9단의 여유와 배려, “알파고를 만든 개발자들에게 존경을 보낸다”고 찬사를 보내주는 품격, “인간이 진 게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고 말하는 겸손 등 알파고 같은 기계가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인간의 미덕은 이렇게 많다.
알파고의 ‘의인화’가 기분 나쁜 이유이다. 다들 알파고를 보며 “무섭다” “이러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인간이 기계 앞에서 자신들을 ‘스스로’ 격하시키는 셈이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주고 갔는지, 남기고 간 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알파고는 우리와 분명히 다르다는 것, 우리만의 것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알파고는 ‘실수’를 한 적이 없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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