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송병기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 번째 백악관 서명으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인 ‘건강보험개혁법(일명 오바마케어)’을 선택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공식업무로 백악관 집무실에서 오바마케어를 손질하는 1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백악관 측은 이번 서명은 오바마케어로 인한 규제 부담을 완화하도록 정부 기관이 지시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0년 3월 승인돼 2012년 연방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아 2014년 시행된 오바마케어는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과 전국민 건강보험을 골자로 하는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PPACA 또는 ACA,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이다.
오바마케어는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미국 내 3200만 명 저소득층 무보험자를 건강보험에 가입시키고 중산층에 보조금을 지급해 의료비 부담을 낮추고자 하는 정책이다. 2017년 1월 현재 약 2100만명의 미국인이 가입해 있다.
하지만 도입 당시부터 공화당 측은 의무가입 거부 시 벌금을 물리게 하는 것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정부 보조금 지급은 재정부담을 증가시킨다며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연말 대선을 물론 연방선거에서도 공과당이 승리하며 오바마케어는 수정 또는 폐지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전망하고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행정명령 1호로 오바마케어 수정(폐지)를 밝혀왔고, 결국 첫 번째 백악관 서명으로 오바마케어 수정을 선택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행정명령은 의회 승인 없이 즉각 효력이 발생한다.
◇반대 여론 만만치 않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케어 수정 또는 폐지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지만 갈길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오바마케어를 폐지할 경우 현재 가입된 2000만명 이상이 건강보험을 잃게 되기 때문에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7일 미국 의회예산처(CBO)는 공화당이 오바마케어 폐지를 추진한다면 첫해에만 약 1800만명의 미국인이 건강보험 혜택을 잃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의하면 의회예산처는 보고서를 통해 “공화당이 대안없이 오바마케어를 없애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10년 내에 건강보험 미가입자가 32000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하고 “개인보험(민간보험)에 소요되는 개인 가입자의 보험료는 10년 이내에 두 배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오바마케어에 대한 유지 의견이 폐지 의견보다 높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는 부담이다.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NBC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이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5%가 오바마케어를 좋은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나쁜 정책이라는 응답자는 41%였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와 NBC방송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오바마케어와 관련된 여론 조사를 실시해 왔으며, 오바마케어에 대한 긍정 응답이 45%를 기록한 것은 역대 최고치였다.
◇트럼프와 공화당, 대안 없는 오바마케어 폐지?
또 다른 논란은 오바마케어를 수정하거나 폐지할 경우 대안이 있는가이다.
실제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지를 담은 관련 예산 결의안을 올해 초 연방 상원과 하원에서 통고시켰지만, 아직까지 오바마케어를 대체할 법률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인 올해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를 위한 보험’을 제공하는 계획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와 제약사가 직접 의약품 가격을 협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당시 당선인)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메디케어(노령층 의료지원)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를 위해 제약회사들이 정부와 직접 의약품 가격 협상을 하도록 강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의회 다수인 공화당과 협업하면서 대통령의 제안이 연방건강보험정책을 점검하는 공화당의 노력을 쥐락펴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마바케어의 대안으로 “약품 가격과 관련해 제약회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제약회사는 정치적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더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또 다른 논란은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묘한 입장차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즉각적인 오바마케어 폐지에 대한 후폭풍을 염두에 두고 단계적인 폐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즉각 폐기를 외쳐온 트럼프 대통령과는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 현지 언론들은 수전 콜린스 등 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오바마케어 폐지 결의안’ 초안 작성 마감 시한을 이달 27일에서 오는 3월3일로 연장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지난 17일(현지시각)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CNN 보도에 의하면 콜린스 의원은 “공화당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됐다는 것이 오바마케어의 문제점 중 하나다. 미국인이 정책상의 균열 때문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월초 공화당 내부에서는 오바마케어를 천천히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수의 상원의원이 오바마케어 폐지 결의안 초안 작성을 미루자고 한 것은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충분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오바마케어를 폐지할 경우, 갑자기 건강보험 혜택을 잃게 될 유권자들의 반발 여론 추이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성급하게 오바마케어를 폐지한 뒤 몰아칠 후폭풍과 모든 책임, 불만을 공화당이 뒤집어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되고 있다고 CNN은 분석했다.
현지 언론보도 기고문을 통해 공화당 랜드 폴 상원의원은 “대체 방안이 나오기 전에는 폐지 투표를 해선 안 된다. 폐지와 동시에 대체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공화당이 (보험 공백) 혼돈에 대한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공화당 내에서도 오바마케어 폐지에 자차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의원들도 있다. 찰리 덴트 하원의원은 오바마케어 폐지 결의안 투표 당시 반대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문제는 신뢰할 만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보조금을 받다가 갑자기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상원과 하원은 물론 민주당은 오바마케어 폐지 반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에는 미국 곳곳에서 오바마케어 폐지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교외 워런의 머컴 커뮤니티 대학에서 열린 집회에서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은 “오늘날 미국은 지구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건강 관리를 권리로 보장하지 않는 유일한 주요국”이라며 “우리가 오늘 할 일은 오바마케어를 보호하고, 내일 할 일은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노령층 의료보험)와 단일 보험자 체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오바마케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더 나은 대안 없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인은 극소수다. 우리는 3000만 미국인의 건강보험을 버리게 놔두지 않겠다고 공화당 동료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퇴임을 앞둔 시점인 이달 초 오바마 대통령도 의원회를 찾아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 등과 오바마케어 지키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songb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