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동아시안컵에서 ‘유럽파 의존증’의 대안을 제시했다. 손흥민, 황희찬, 권창훈 등 유럽파에 무게가 실렸던 공격라인에 새로운 옵션을 가미하며 월드컵에서 운용할 전술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다만 수비조직력에선 여전히 의문부호가 달린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최종전에서 4대1 대승을 거뒀다.
이날 한국은 대회 2연패를 달성함과 동시에 일본을 상대로 7년 7개월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한국은 2010년 5월24일 승리한 이후 5차례 일본을 만나 3무2패로 한 번도 일본을 이기지 못했었다.
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 북한 등 우세로 평가되는 팀들에 크게 고전했던 탓에 팬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있었다. 중국전에선 2대1로 앞서가다가 후반 막바지 전술대응에서 뒤처지며 동점골을 허용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축구는 70분 동안 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초반 10분과 후반 막바지 대표팀의 체력·집중력 저하를 지적했다.
북한전 역시 좋지 못했다. 예상한대로 북한이 한국 수비 진영에서부터 저돌적으로 압박했다. 북한의 밀집수비에 한국은 다급하게 공격을 전개하다가 실수를 범했다. 후반 19분경 북한 수비수 리영철이 자책골로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한국은 더 큰 비판에 직면했을 터다.
일본전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원톱, 스리톱 등을 실험하다가 일본전에서 4-4-2를 다시 꺼냈다. 지난 11월 콜롬비아를 무너뜨린 그 전술이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수비-미드필더 라인에 일본이 꽁꽁 묶였다. 나중엔 스리톱으로 전환해 라인을 올린 일본에 비수를 꽂았다.
특히 빌드 업 상황에서 이재성의 볼 간수 능력이 빛났다. 한쪽에 시선이 쏠리자 김신욱의 헤딩 플레이가 위협적인 결과물을 창출했다. 좌측에선 김민우와 김진수가 상호보완적인 플레이로 일본에 혼란을 줬다. 김민우는 사간 도스 시절 좌측 공격수로 뛴 적이 있다. 사실상 좌측이라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셈이다.
김신욱-이재성 조합은 신 감독이 찾아낸 가장 큰 성과다. 앞선 중국전에서도 김신욱과 이재성은 각각 1골1도움을 올리며 찰떡 호흡을 보여줬다. 일본전에서는 1도움 이상의 활약으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정우영의 오른발도 빛났다. 정우영은 지난 평가전에서부터 자로 잰 듯한 롱패스로 탄성을 자아냈다. 이번 일본전에선 환상적인 무회전 프리킥 골을 넣었다. 한일전에서 프리킥 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이제는 유럽파라고 해서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 감독은 19일 유럽파 현지답사를 떠난다. 프랑스 리그앙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는 선수들을 점검할 예정이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실사 대상에서 빠진 건 단지 겨울 휴가시즌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황희찬(잘츠부르크) 역시 월드컵을 장담할 수 없다. 구자철, 지동원 등의 경우 더욱 그렇다.
유럽파라면 무조건 우선 기용되던 과거에는 국내파 선수들이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손흥민 최고 듀오로 이근호가 거론될 정도로 국내파 선수들의 경쟁력이 인정받고 있다. 이재성 역시 해외 진출을 스스로 타진할 정도로 길이 활짝 열려있다.
월드컵이 6개월여 앞으로 바짝 다가왔지만 포지션별 경쟁이 식을 줄 모른다. 당장 신 감독이 어떤 포메이션을 가동하냐에 따라 유럽파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서 대거 빠질 수 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의리’로 점철된 선수기용에 큰 비판을 받았다. 적어도 의리는 러시아에 닿진 말아야 한다. 신 감독의 이번 유럽 실사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