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협회’라는 이름의 무게

[옐로카드] ‘협회’라는 이름의 무게

[옐로카드] ‘협회’라는 이름의 무게

기사승인 2017-12-29 15:26:25

‘협회’라는 두 글자가 고인물의 대명사가 된 건 스포츠사에 매우 부정적인 일이다. 한 개인으로 보면 스포츠는 사익도 공익도 아닌 여가 활동에 가깝다. 여기에 공공성을 씌우고 공정함과 전문화를 이끌어야 하는 게 협회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 2017년이다.

8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야구는 최규순 게이트, 음주운전, 비디오판독 오심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 가운데 일부 선수가 SNS상에서 저급한 대화를 나누거나 팬 서비스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며 국내 최대 인기 스포츠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문제는 논란을 수습해야 할 KBO가 승부조작 묵인, 입찰‧채용비리 등으로 적폐의 몸통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구본능 총재와 양해영 사무총장이 동반 사퇴하고 정운찬 체제에 돌입했지만 KBO에 뿌리박힌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한 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KBO가 변하려면 도려내야 할 게 더 많다”면서 이들의 개혁 드라이브는 ‘진행형’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축구 역시 바람 잘 날 없었다. 성인 남자 축구대표팀이 부진을 거듭하는 사이 축구협회는 히딩크 전 감독과 매끄럽지 못한 소통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 가운데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 등 전‧현직 임원이 공금 1억1000여 만원을 유흥비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횡령)로 불구속 입건되며 팬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대표팀 경기력 하락 이슈와 맞물려 팬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팬들은 축구협회 앞에서 집회를 벌이는 등 오랫동안 쌓인 불만을 표출했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지만 논란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김호곤 기술위원장 겸 부회장이 사의를 표하고 이용수 부회장, 안기헌 전무이사 등이 물러났다. 이임생, 박지성 등 협회와 큰 연줄이 없는 인물이 자리를 메웠으나 홍명보 전 국가대표 감독이 전무이사로 선임되며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태용호가 11월 2차례 평가전과 12월 동아시안컵에서 반전을 일궈내며 그나마 분위기를 가라 앉혔으나 협회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만방에 울려 퍼지고 있다. 한 축구 업계 관계자는 “협회는 몇몇 인사 교체로 연막을 치고 있다. 확실한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스포츠협회의 경우 사실상 사익단체로 전락했다. 한국e스포츠협회가 대한체육회에서 제명되는 등 공공 업무가 안 된 사이 내부적으로는 비리가 공공연하게 발생했다. 협회 핵심 인물들은 국회의원을 등에 업고 업체를 협박해 후원금을 받은 뒤 이를 자금 세탁해 개인이 챙기는 방식으로 협회를 이용했다. 앞서 검찰조사에서 드러난 몇몇 홈쇼핑 업체뿐 아니라 국내외 게임사들도 협회의 ‘협박 대상’이었단 사실은 이미 업계에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대부분 게임 종목사들이 독자 행보를 선언한 상황에서 협회가 이전의 역할을 되찾긴 힘들어 보인다. 비리의 단초가 기업 후원에서 비롯된 탓에 스폰서십 단절이 불가피한데다가 국회에서 협회 예산 20억 원을 삭감해 이들의 처지는 더욱 비루해졌다.

협회의 회생 가능성을 10% 미만으로 본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지금껏 e스포츠협회는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소위 ‘대박 친’ 게임을 방송사와 게임사에서 대회로 키워내면 주워 먹는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왔다”면서 “돈이 되는 사업 확장에 목을 맸을 뿐 종목 발굴 연구는 한참 뒤쳐져있다. 대기업 중심의 게임단도 요즘 추세가 아니다. 다시 일어서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는 유독 스포츠 종목을 관리하는 협·단체 비리가 많았다. 태권도의 총본산 국기원은 올해 공금횡령·부정채용 등의 의혹으로 경찰의 압수수색 조사를 받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선수를 탈락시키고 다른 선수를 국제대회에 출전시키는 등 선발 비리를 저지른 전 볼링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 5월 경찰에 구속됐다. 부산 복싱협회 고위간부들의 경우 선수에게 지급된 훈련비를 뜯어내고 공금을 유용하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 외에도 시‧도 단위 종목단체들은 횡령‧성 추문 등 사건사고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8월까지 문체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접수된 스포츠 비리 건수는 742건에 달한다. 조사를 마친 559건 가운데 수사기관으로 송치되거나 징계처분이 내려진 사안은 122건이다. 업계는 드러나지 않은 비리건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관중은 앞에 보이는 자로 판단한다. 앞에 선 자는 선수와 구단, 협회쯤 된다. 선수 버금가게, 혹은 그 이상으로 협회에게 공인의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그런데 이들이 완충 역할은커녕 논란의 산파가 된다면 더 이상 그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협회란 명찰을 단 이상 이들은 더 완벽해야 한다. 2018년에는 반드시 그러길 바란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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