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무장괴한을 신고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남성이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김태업)는 11일 “간첩·간첩방조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1979년 징역 10년의 판결을 확정 받았던 A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적법한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관들로부터 자백을 강요받는 가운데 임의성이 없는 심리상태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진술을 했다고 인정된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A씨는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대에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의 지령을 받고 간첩 행위를 한 범법자로 낙인찍혔다”며 “출소 후에도 보안관찰 등으로 상당 기간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 받았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 1974년 6월 집에 나타난 무장괴한 2명을 경찰에 신고했다. 당시 경찰은 괴한들을 소도둑으로 판단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A씨는 2년 뒤 전남 신안군에 남파간첩과 내통한 사람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 중이던 경찰국 대공분실로 연행돼 55일간 불법 구금됐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관들은 당시 침입했던 괴한들이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A씨의 친척으로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이들에게 지역 예비군 상황을 알려준 뒤 북한 복귀를 도와줬다는 것이다. 자백을 강요받은 A씨는 남파간첩의 지령 수행을 돕고,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수집해 간접 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법원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A씨는 “무장괴한을 만났을 뿐 남파간첩을 만난 적도 없다”며 “국가기밀을 수집한 사실도 없다”고 항소했지만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도현 기자 dobes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