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의 남자 보좌관은 저(여성)를 꼭 집어서 ‘여기 커피 좀’이라고 시킵니다. 보좌진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를 지목한 겁니다”, “온갖 잡스러운 일, 택배 나르기, 전화 받기, 탕비실 정리 등을 여자이기 때문에, ‘모성’을 강요당했고, 정책을 배울 수 있는 기회에서 완전히 도려내졌습니다. 국정감사 때 제게는 보좌진들 삼시세끼 챙기는 것과 자료요구를 대신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배달음식을 먹을 때면 차리는 것부터 먹고 나서 정리하는 것까지 여성들 몫이에요”….
국회는 과연 성평등한 일터일까?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미투 운동’이 들춘 것은 우리사회의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일 터다. 문화계, 연예계, 법조계, 의료계, 정치권 등 사회 각계에 미투의 바람이 불었을 때도 국회는 철옹성이었다.
당시 페이스북 ‘여의도 대나무숲’에는 이른바 ‘영감님들(국회의원을 일컫는 은어)’이 여성 보좌진을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를 폭로하는 비토성 글이 넘쳐났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적어도 지난해 8월 이전까지는 그랬다.
지난해 8월16일 국회에서는 유의미한 움직임이 일었다. 익명을 기반으로 국회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자발적 페미니스트 모임 ‘국회페미’가 결성된 것이다. 현재 30여명이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잠깐, 날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틀 앞선 1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위력 행사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의 결정에 여성계는 일제히 반발했었다.
국회페미는 안 전 지사의 사건을 통해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회문제를 국회의 기득권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목도했다고 설명했다. 이들과의 대면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다. ‘익명’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기자에게 보내온 이메일을 통해 “‘위력은 있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모순적인 판결에 대해 대부분이 하급인 여성 보좌진들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던 일’이었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미투 국면’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때에, 국회 보좌진으로서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경청하고 정책적, 제도적인 타개책을 찾아야 함에도 많은 기득권 남성 보좌진들이 1심 판결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판결이다’라며 여성 보좌진들의 분노를 ‘뭘 모르고 감정적으로 군다’는 식으로 깎아내리기도 했다.”(국회페미)
그러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마해 두 번이나 도지사에 당선된 안희정의 성폭력에 대해 민주당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며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평소 성평등 의제에 목소리를 높이던 의원들조차 입을 다물었다”고 꼬집었다.
◇ 정책 대신 차 심부름에 녹초
국회페미는 6월 한 달 동안 국회를 성평등한 일터로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명은 ‘커피는 여자가 타야 제 맛입니까?’이다. 첫 캠페인 주제와 관련해 이들은 “하루 종일 방문자 차 대접, 무거운 짐 옮기기, 전화 받기와 의전에 필요한 각종 심부름 등 허드렛일만 하느라 여성들은 정책을 배워 승진할 기회가 차단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캠페인을 통해 여성을 허드렛일만 하는 존재로 도구화하고, 성장의 기회를 차단해 약자의 위치에 가두는 국회의 잘못된 성차별 구조가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관련해 국회페미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일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불편·부당한 사례를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국회페미 구성원들이 지적한 것은 커피·차 접대 문화였던 것. 이들은 캠페인 포스터를 각 의원실, 사무처, 도서관 등에 전달 및 부착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