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편지’(감독 이현정)의 주인공은 베트남 여성이다. 그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이주했다. 이후 그녀가 맞닥뜨린 것은 신혼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툭하면 잔인한 폭력을 퍼부었다. 참다못한 그녀는 남편에게 작별을 고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튿날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
비극은 이 사연이 영화 속 허구의 내용이 아니란 사실이다. ‘남편’이란 작자의 발길질에 삶을 마감할 줄 그녀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가 처음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이러한 비극을 과연 예감했을까.
결혼과 함께 타향살이를 결심하고 한국에 온 결혼 이주여성에게 우리사회는 과연 살기 좋은 나라일까?
앞선 사례와 여러 지표를 종합하면, 대답은 ‘아니오’다. 앞선 살인사건 형사 재판에서 판사는 남편에게 부인의 편지를 읽어줬다. 직접 낭독해 들려준 편지 속에는 남편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과 작별의 슬픔이 배여 있었다. 그러나 살인자가 된 남편은 그 마저도 철저히 망가뜨렸다. 우리 사회는 이 비극에 대해 분노했다. 그뿐이었다.
최근 발생한 베트남 여성을 향한 무차별 폭력은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동남아시아 출신 아내가 남편에게, 시아버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은 2000년 이후에만 숱하게 발생했다. 다음은 대법원 판례로 본 필리핀 출신의 결혼 이주여성과 그의 가족을 향해 자행된 폭력 사건이다.
2017년 필리핀 여성 A씨와 결혼식을 앞둔 한국 남성 B씨는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필리핀에서 입국한 A씨의 동생 C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B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범행 당시 피해자는 조카와 언니를 위해 신고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성추행 피해경험이 있어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인 점도 인정된다. 실제로 피해자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 불면증으로 진단받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피고인은 항소심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아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시야를 넓혀보자. 비극은 결혼 이주여성 전체에 해당한다. ‘2018년 한국인권보고서’는 그녀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17년 7~8월 결혼이주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은 가정폭력에 신음하고 있었다. 10명 중 4명은 가정안에서의 폭력을 경험했단 말이다.
폭력의 양상도 다양했다. 심리·언어폭력 경험자는 314명(81.1%)이었다. 또 앞서 가정폭력 피해자 중 147명(38.0%)은 일상적인 폭력 위협을 당했고, 77명(19.9%)는 흉기에 의한 협박을 경험했다. 성적 학대 피해 여성도 263명에 달했다.
고국이 아닌 타향살이를 하면서 이러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딱히 주변에 도움의 손을 내밀지도 못했다. ‘주변에 알려지는 게 창피해서’(35명) 또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29명),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9명) 등. 정리하면, 가정폭력 피해를 당해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결혼 이주여성을 향한 폭력과 살인, 각종 범죄는 차고 넘친다. 헌법은 인종,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존중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그렇지만 법은 멀고 현실은 잔인하다.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이 이러한 비극적 죽음을 맞는데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못했다. 다시 묻는다. 결혼 이주여성에게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