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그룹 AOA의 멤버 지민이 팀을 탈퇴하고 연예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룹 멤버였던 배우 권민아를 10여 년간 괴롭혔다는 논란 때문이다. 4인조가 된 AOA는 예정돼 있던 ‘원더우먼 페스티벌’ 출연을 취소했다. 지민과 특히 절친했던 멤버 설현과 개그우먼 김신영은 ‘지민의 괴롭힘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권민아가 SNS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린 지 하루하고도 반나절만인 지난 4일 밤 입장문을 내 “이 모든 상황에 책임을 통감하고 아티스트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좋지 않은 일로 걱정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권민아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인터넷 연예매체 텐아시아는 “(FNC엔터테인먼트가) 지민에 대한 더한 이야기가 나올까 봐 탈퇴로 마무리한 것을 알고 있다”고 쓰기까지 했다.
지민의 사실상 은퇴 결정이 이번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팀 내 괴롭힘 문제의 핵심은 성과제일주의에 빠진 산업과 기획사에게 있다. 그런데도 FNC엔터테인먼트는 ‘지민 탈퇴’라는 (그들 나름의) 초강수를 둠으로써, 이번 논란을 개인의 인성 문제로 축소했다. “책임을 통감하고 아티스트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FNC엔터테인먼트의 입장문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FNC엔터테인먼트는 팀 내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별다른 보호조치 없이 오랜 시간 사태를 방관했다. 권민아는 AOA 활동 당시 소속사였던 FNC엔터테인먼트에 지민의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으나, 회사가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대처는 피해자에게 좌절감과 무력감을 안기고 가해자에게는 무언의 힘을 실어준다. FNC엔터테인먼트를 이번 사건의 조용한 동조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배경에는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K팝 산업의 강압적인 시스템이 있다. 권민아는 부친상을 당한 뒤 대기실에서 울다가 지민에게 “너 때문에 분위기가 흐려지니 울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차적으로는 타인의 슬픔을 돌보지 못한 지민에게 잘못이 있겠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의 감정보다 팀의 사기 진작과 나아가 성공을 우선시하는 기획사와 산업의 태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요 기획사는 팀 단위 연예인을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하기 위해 리더에게 강력한 권한과 막중한 책임을 동시에 부여해왔다. 아이돌 그룹의 리더들이 기획사의 입장을 체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민도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팀 내의 강한 위계질서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갈등을, ‘나쁜 개인’을 단죄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음은 명징하다.
이번 논란 이후 일각에서는 ‘K팝 시장을 사멸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민을 방출한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듯, K팝 시장을 무너뜨리는 것이 이 생태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되진 못한다. 뻔한 얘기지만 극한의 경쟁 체제 안에서 개개인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상품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싶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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