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사이드] “이상적인 아티스트” 보아가 20년간 쌓아온 것은

[딥사이드] “이상적인 아티스트” 보아가 20년간 쌓아온 것은

“이상적인 아티스트” 보아가 20년간 쌓은 것은

기사승인 2020-08-27 08:30:02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시작은 작은 행운이었다. 1998년, 경기 구리에 백화점이 개장한 것을 기념해 열린 춤 경연대회에 가수 보아가 출전할 수 있었던 것 말이다. 중학생 이상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였다. 그런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보아와 그의 친구에게 춤을 한 번 춰 보라고 권유한 이가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의 무대를 평가하는 잠깐의 빈 시간을 내어준 것이다. 무대를 본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보아와 친구에게 ‘오디션을 보러오라’고 제안했다. 보아의 나이 13세 때의 일이다.

그 한 번의 무대가 훗날 수많은 최초·최고의 기록을 쓴 ‘아시아의 별’이 탄생한 자리라는 것을 아마 보아 자신도 몰랐으리라.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보아의 지난 날은 곧 K팝의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 가수 최초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한국 가수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역대 최연소 가요대상 수상, 해외 시장을 공략한 첫 번째 성공 모델이자 후배 가수들과 가수 지망생들의 모범적인 역할 모델….

보아가 데뷔를 준비하던 1990년대 말은 지금과 같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자리를 잡기 전이었다. 보아는 자신이 살던 경기 남양주에서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이 있던 서울 방배동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며 3년간 연습했다. SBS ‘인기가요’에서 데뷔 무대를 선보인 뒤에도 보아는 연습실로 향했다. 스스로도 “망쳤다”고 돌아보는 일본 데뷔 쇼케이스 이후에는 미국 뉴욕으로 떠나 또 한번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다. 노력이 통한 걸까. “단독 콘서트를 열려면 10년은 더 걸리겠다”는 일본 소속사 관계자의 혹평을 보기 좋게 깨부수고, 보아는 1년 만에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네 번째 싱글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이룬 쾌거였다.

어린 여성들을 쉽게 깎아내리고 끌어내리던 시기였다. 보아는 데뷔 초 인터뷰에서 “두 마리 토끼”라는 표현을 썼다가 ‘애늙은이’라며 비난 받았다. 악의적이고 모욕적인 루머가 사실인 양 온라인을 떠돌아도, “안티 덕분에 데뷔하기 전에 (자신이) 많이 알려진 건 사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수록 보아는 자신을 완벽하게 벼리고 단련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넘버 원’(No.1), ‘아틀란티스 소녀’ ‘마이 네임’(My Name), ‘걸스 온 탑’(Girls on Top) 등 숱한 히트곡을 냈다. 2009년 낸 미국 데뷔 음반은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27위에 올랐다.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이었다.

“나를 잘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렇지만 나는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보아가 데뷔 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됐다. 보아는 ‘아이돌은 기획상품’이라는 인식을 깨고 작가주의형 싱어송라이터로 진화했다. 2012년 발표한 자작곡 ‘온리 원’(Only One)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2015년엔 전곡을 작사·작곡·프로듀싱한 8집 ‘키스 마이 립스’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보아는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종합 엔터테이너로서 재능을 가졌을뿐 아니라, 그 재능을 끊임없이 개발하려고 노력”해온 데다가 “높은 완성도의 음반을 꾸준히 내면서도, 자신이 성장해온 과정을 후배들과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해서다. 보아는 업계 후배들뿐 아니라 오직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성취하고자 하는 뭇 여성들에게도 용기와 영감을 준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 대신 “내 안에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그 소리에 집중하자”(‘라이프플러스’ 인터뷰)는 메시지를 자신의 족적으로 증명한 덕분이다.

보아는 데뷔 초 가수로서 자신의 수명을 5년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당시 아이돌의 생명 연한이 그 이상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아는 이제 “보아라는 아티스트로 태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죽자”(네이버 브이라이브)고 말한다. 그 무엇에도 갇히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름으로만 설명되는 존재. 재능과 노력, 시간이 축적돼 만든 보아의 오늘이다.

wild37@kukinews.com /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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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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