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주인공들, 왜 감정이 없을까 [궁금해서]

요즘 드라마 주인공들, 왜 감정이 없을까 [궁금해서]

기사승인 2020-09-03 08:00:04
▲tvN ‘악의 꽃’ 스틸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tvN 수목극 ‘악의 꽃’ 도현수(이준기), SBS 금토극 ‘앨리스’ 박진겸(주원), tvN 토일극 ‘비밀의 숲2’ 황시목(조승우). 이들의 공통점은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의 남성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겐 또 한 가지 닮은 점이 있다. 바로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얼핏 보면 냉정하기만 하거나 더 나아가 악인처럼 묘사되기도 하는 이들이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안방극장을 차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자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악의 꽃’ 도현수는 사랑을 모르는 ‘사랑꾼’이다. 그는 기쁨과 슬픔, 죄의식과 동정심 등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아버지와 똑같다는 낙인이 찍혀 불운한 인생을 살다가, 우연한 사고로 인해 백희성이라는 새 신분을 얻고 위장해 살아간다. 백희성이 된 그는 형사인 차지원(문채원)을 만나 결혼하고 배우자, 아이와 함께 누가 봐도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백희성의 이면엔 도현수의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도현수의 분투가 있다. 그러나 과거 친부가 벌인 연주시 연쇄살인사건을 차지원이 수사하며 평온한 일상에 금이 가고, 도현수도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도현수는 “차지원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지켜본 시청자는 그의 마음에 꽃이 피어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tvN ‘비밀의 숲2’ 스틸

‘비밀의 숲’ 황시목은 감정 없는 캐릭터의 ‘원조’격이다. ‘비밀의 숲’ 시즌1에서는 그가 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과거사가 등장한다.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하는 뇌섬엽이 지나치게 발달해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 날 절제술이 불가피했고 그 후유증으로 공감을 결정 짓는 통로가 막혀버렸다. 하지만 황시목의 이런 특징은 검사라는 직업군에선 장점이 된다.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사건을 예리함과 냉철함으로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야 하는 순간엔 감정이 배제된다. 주변의 시선에도 흔들림 없이 진실만을 향해 가는 것이다. 황시목은 ‘비밀의 숲’ 시즌2에서도 여전히 조직과 주변인에게 바른말을 하며 묵묵하게 그러나 거침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간다.

▲SBS ‘앨리스’ 스틸

‘앨리스’의 박진겸은 선천적 무감정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형사다. 시간여행자인 어머니 박선영(김희선)이 시간여행을 위해 방사능으로 뒤덮인 웜홀을 통과해, 진겸을 낳았기 때문이다. 어린 진겸은 타인과 교류가 힘들 정도로 공감 능력이 없었지만, 선영의 교육으로 조금씩 사회에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선영이 정체 모를 존재에게 습격받아 사망한 후 무감각하기만 했던 그의 삶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어머니를 품에 안고 오열하던 진겸은 범인을 잡기 위해 형사가 된다. 대다수 사람처럼 일상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어머니에 관한 감정만은 남달라 보인다.

▲‘비밀의 숲2’·‘앨리스’·‘악의 꽃’ 스틸 / 사진=tvN·SBS 제공

무감정 캐릭터들이 브라운관을 누비는 것에 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드라마상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를 조금 과장해 표현하는 부분은 있다”면서도 “처음엔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캐릭터가 상대 역할과 교류하며 점차 감정을 깨닫는 과정을 시청자는 흥미롭게 여긴다”고 봤다.

곽 교수는 “여성 시청자는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목표한 것을 향해 나가는 이성적인 남성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남성 시청자는 이런 남성 캐릭터에 대리만족을 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면서 “한때 드라마 시청자가 마초 성향의 ‘나쁜남자’에 열광했지만, 최근에는 반대 성향의 남성 캐릭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무감정이 특징인 남성 캐릭터는 냉철하고 이성적이지만, 마음을 연 소수의 상대에게는 진심을 보인다는 면에서 이들과 또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최근 등장한 감정 없는 드라마 주인공들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짚었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틀린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가 드라마 속 감정 표현이 서툰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공 평론가는 “사회에서 감정을 교류하다가 상처를 받았을 때 용서와 뉘우침으로 풀어야 하는데, 그런 기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극단적으로 소통을 차단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면서 “일상에서 감정 교류와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 시청자가 감정 없는 주인공에게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제작하는 측면에서도 이익이 있다. 공 평론가는 “감정을 느끼기 힘든 캐릭터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줘야하기 때문에 연기 폭을 넓히고 싶은 배우에게는 또 다른 도전의 영역”이라며 “배우들의 연기 몰입도가 높은 덕분에 시청자가 감정 없는 인물을 이해하기 수월한 부분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