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흑역사’ 취급받던 ‘소몰이 발라드’가 최근 다시 인기다. 시작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였다. 남성 보컬 그룹을 제작하는 특집에 SG워너비가 출연한 뒤부터 음원 차트가 요동쳤다. ‘타임리스’(Timeless), ‘라라라’, ‘내 사람’, ‘살다가’ 등 옛 히트곡이 다시 차트에 나타났다. 이들 음악이 다시 주목받자, 방송사들은 저장고에 묵혀둔 SG워너비 영상을 찾아내 유튜브에 올리느라 바쁘다.
때마침 부활을 준비하던 싸이월드도 2000년대 유행가 열풍에 힘을 실었다. 당시 대중문화를 적극 향유하던 3040 세대는 유튜브에 ‘싸이월드 배경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추억에 젖었다. 가요 제작자들도 이런 흐름에 발 빠르게 동참했다. 가수 황인욱은 2005년 유행한 ‘응급실’(원곡 이지)을 리메이크해 음원사이트 멜론 24히트 차트에 진입했다. 지난달 공개된 하동균·봉구의 ‘기다릴게’(원곡 하동균·이정) 역시 멜론 일간 차트에서 31위까지 오르며 인기를 누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신곡 시장 위축도 옛 유행가가 소생한 배경 중 하나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원은 “제작자 입장에서 히트곡 리메이크는 요즘 같은 불황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짚었다. 노래를 띄우는 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이 줄어들고, 경쟁할 신곡도 많지 않아서다. 김 수석은 “경서의 ‘밤하늘의 별을’(원곡 양정승)처럼, 일단 차트에 진입하면 롱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도 장점”이라고 부연했다.
과거 혹평을 벗고 다시 도약하기는 2010년대 K팝도 마찬가지다. 그룹 빅뱅·원더걸스·소녀시대 등이 성공하며 K팝 시장이 팽창하던 2010년대엔 비범한 댄스곡이 많이 나왔다. 지난해 스브스뉴스 ‘문명특급’ 팀이 재조명한 그룹 제국의 아이들 ‘마젤토브’, 틴탑 ‘향수 뿌리지마’가 대표적이다. 현란한 사운드, 의미보단 말맛과 중독성에 집중한 가사, 육성을 기계처럼 변조한 오토튠 등이 결합한 2010년대 K팝은 당시엔 ‘음악성이 떨어진다’고 비판받았으나, 최근 각광받고 있다.
여성 아이돌의 음악은 재평가가 시급하다. 음악보단 외양과 콘셉트를 강조한 기획, ‘아이돌’과 ‘뮤지션’을 분리하는 인식 탓에 2010년대 활동한 여성 아이돌 상당수가 실력과 음악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최근 K팝 위상이 높아지고 아이돌을 전문 음악인으로 보는 시각이 자리 잡으면서, 온라인에 친숙한 2030 세대 사이에서 여성 아이돌의 예전 발표곡을 회자·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명특급’이 최근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줄 명곡) 특집으로 소개한 28곡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18곡이 여성 아이돌 음악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2000년대 미디엄 템포 발라드나 2010년대 댄스곡은 엇비슷한 ‘소몰이 창법’이나 오토튠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면서 “최근 벌어지는 역주행은 소외된 2030 세대가 과거 즐겼던 문화요소를 현재로 소환해서 위안을 얻는 현상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놀면 뭐하니?’ ‘문명특급’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