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서울 복귀하는데, 우리는 내려가라니”

“국민연금은 서울 복귀하는데, 우리는 내려가라니”

본점 부산 이전 두고 산업은행 갈등 격화
지자체들 금융 공공기관 유치 경쟁 시작
“국민연금 실패 사례 보고도 교훈 못 얻었나”

기사승인 2023-03-10 17:45:20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KDB산업은행 노동조합이 ‘위법·졸속 산업은행 이전 추진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 개최’를 열었다.   사진=정진용 기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복귀설’이 논란이다.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최저를 기록하면서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가 무분별한 공공기관 지역 이전 추진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10일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주최한 조찬 정책포럼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을 두고 “기금운용본부는 전주에 둔다고 법에 명시돼있다. 법을 바꾸지 않으면 이전이 쉽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서울 이전 검토를 지시했다는 보도다. 대통령실은 관련 내용을 부인했지만 여론은 술렁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9조원대 운용 손실을 기록했다. 투자 수익률은 -8.2%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후 역대 최대 규모 손실이다. 기금 수익률 악화 원인으로 기금운용본부 위치가 지목됐다.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2017년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다. 전문 고급 인력 유출이 이어지고,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수년째 계속됐다. 

대통령 공약…부산 본점 이전 앞둔 산업은행

당장 부산으로의 본점 이전을 반대해 온 국책은행 KDB산업은행 노동조합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지방 이전이 고급인력 이탈, 재정 악화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산은 본점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1월 말 업무보고에서 올해 연말까지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을 위한 지방이전 계획안 승인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1항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함에도 정부가 국회를 패싱하고 명분도 없이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직원들의 목소리다.

산은이 기업대출, PF대출, 벤처투자 등 대규모‧고위험 자금을 지원하고, 국내외 금융기관,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다수 민간기관과 정부 부처와 상시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방 이전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1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KDB산업은행 노동조합이 ‘위법·졸속 산업은행 이전 추진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 개최’를 열었다.   사진=정진용 기자

하반기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예고…국책은행 눈독 들이는 지자체

산은 노조가 이날 오후 3시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개최한 윤석열 정부 규탄 결의대회에는 약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현준 산은 노조위원장은 “윤 대통령은 현행법이 산은 본점 소재지를 서울특별시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를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봤나”라며 “본인은 국민과 가까이 소통하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해 놓고는 왜 산은은 부산으로 이전시켜 고객 기업들과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나”라고 비판했다. 

일단 지방 이전이 구체화된 것은 산은뿐이지만 다른 금융 공공기관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하반기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예고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1월 충청권 4개 시·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수도권 지역의 공공기관 지역 이전이 올해부터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공공기관 유치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 1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을 관심유치기관으로 분류했다. 특히 한국은행 본점 유치는 김진태 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하다. 전남은 농·수협중앙회를, 대구는 IBK기업은행을, 부산은 산은 외에도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추가 유치를 원하고 있다. 다만 농수협중앙회는 이전 대상 공공기관에 포함되지 않는 데다 비수도권으로 이전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  

“금융산업, 집적효과 중요” 우려도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례를 들어 “윤석열 정부는 실패 사례를 보고도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려 한다”면서 “금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수한 인적 자원과 촘촘한 시장 네트워크다.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금융 도시들은 모두 우수인력 확보와 금융 네트워크 조성을 위해 금융 기능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다. 그런데 한국만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르고 금융 기관을 분산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국책은행에서도 우려가 높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융산업은 집적효과가 중요하다. 금융기관들을 전국적으로 분산하면 경쟁력을 상실시키는 것”이라며 “인력 수급이 쉽지 않고, 정원을 못 채우는 문제 때문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서울로 올린다면서 산은은 부산으로 보내겠다는 것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산은이 끝이 아니라 다른 국책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정치 논리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며 “지방 인구, 세수 늘리자고 대한민국 전체 경쟁력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