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철이(가명·15)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 7일 전북 전주 위센터에서 만난 철이는 지난 봄 있었던 일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기억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만 가로저었다.
철이는 5개월 동안 세상을 거부하고 방 안에서 혼자 인터넷 게임만 했다.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올해 초 전주위센터 곽영신 사회복지사가 찾아갔을 때에도 문을 걸어 잠근 채 인기척도 내지 않았다.
곽 복지사는 119구조대를 불러 문을 열었다. 철이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검은색 빵모자를 눌러 쓴 채 이불을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119 구조대원은 “이런 녀석은 학교에 보내도 소용없다”며 “당장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철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과병원과 대안학교를 여러 차례 오갔다. 늘 외톨이였던 철이는 기초학습부진 우울증 무기력 등이 겹쳐 있었다.
위센터에서는 우선 철이의 인터넷중독부터 고치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인터넷을 쓰지 않도록 아예 모뎀과 키보드를 빼버렸다. 주말에만 설치를 해줬다. 매일 아침 곽 복지사가 철이를 태워 대안학교로 등교시켰다.
모래 치료를 병행했다. 철이는 거미 인형을 집어 모래판 가운데 놓았다. 거미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철이는 거미가 미워보인다고 했다. 아버지는 철이가 네 살 때 돌아가시고 일본인인 어머니가 공공근로를 해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다. 철이는 어머니의 긴 일본식 이름이 싫었다.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놀림 받는 것도 싫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돌봐주지 않고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라는 걸 철이도 알고 있었다. 인터넷 금단 증상을 이겨내기 위해 잠이 오지 않아도 밤이면 자리에 눕고, 아침엔 하품을 하면서도 대안학교로 가는 차에 탔다. 텃밭에 상추 오이 토란도 심었다. 물을 준 곳에 싹이 나자 활짝 웃었다. 위센터에서 소개해준 미술학원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데생을 잘한다”고 칭찬도 받았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기자가 철이에게 “그땐 왜 집에서 게임만 했니”라고 물으니 다시 표정이 굳어지고 고개를 돌렸다. 곽 복지사는 “과거를 떠올리면 다시 빠져들 것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이나마 바뀐 건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주 위센터는 철이의 미술 공부를 도와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 전주=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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