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일손을 놓으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것 같다.”
세계적 미디어 재벌로 올해 86세인 섬너 레드스톤 비아콤 회장의 말이다.
70세 이상 고령임에도 레드스톤 회장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최고경영자(CEO)들이 국내에도 많다. 이들에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들은 호황과 불황을 여러번 겪으면서 터득한 지혜로 지금의 위기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다.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은 지난 10일 미수(米壽·88세) 기념으로 회고록 ‘장수경영의 지혜’를 발간했다. 흑초로 건강을 관리해 신체 나이가 49세라는 박 회장은 최근 흑초 브랜드 ‘백년동안’을 내놓았다. 제품명도 “마셔서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뜻이다.
박 회장과 동갑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5월 너무나 정정한 모습으로 부산의 유통 격전지 현장에 나타나 화제가 됐다. 신 회장은 한국와 일본을 주기적으로 오가는 ‘셔틀 경영’을 30년 넘게 해오고 있다. 매출액 상위 30대 기업의 상근이사만 따져보면 신 회장이 최고령이며 정몽구(72) 현대·기아차 회장과 이수빈(71) 삼성생명 회장이 2, 3위다.
식품업계에는 올해 91세인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을 비롯해 유난히 고령 CEO가 많다. 전 회장은 요즘도 대관령 삼양목장을 자주 찾는다. 배상면(86) 국순당 회장도 휴식을 사치라 여기고 매일 배상면주류연구소로 출근해 연구 상황을 체크한다. 신춘호(78) 농심그룹 회장은 최근 ‘둥지냉면’과 ‘후루룩국수’의 개발과 네이밍 작업에 적극 관여했다. 김상하(84) 삼양그룹 회장과 김재철(75) 동원그룹 회장도 여전히 의욕적인 ‘현역’이다.
30∼40대 CEO가 대부분인 정보기술(IT) 업계에선 김택호(74) 프리씨이오 회장이 눈에 띈다. 프리씨이오라는 회사 자체가 IT 분야 퇴직 사장들이 컨설턴트로서 후배 CEO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곳이다.
화장품 업계엔 유상옥(77)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건설 쪽에선 조남욱(77) 삼부토건 회장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전·현직 회장인 강신호(83) 동아제약 회장과 조석래(74) 효성그룹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원로다.
해외에선 홍콩 영화계 대부인 런런쇼(102) 쇼브라더스 회장이 단연 최고령 CEO다. 홍콩에는 런런쇼 회장뿐 아니라 최고 갑부 리카싱(81) 청쿵그룹 회장과 청위텅(84) 뉴월드디벨롭먼트 회장 등 현업에서 활약하는 창업 1세대가 많다.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미국 재계에선 ‘기업 사냥꾼’ 커크 커코리언(92) 트라신다 회장이 최고령 현역이다. 이밖에 세계 최대 과일 판매상인 돌푸드를 운영하는 데이비드 머독(86) 캐슬린앤쿠크 회장, 워런 버핏(79)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루퍼트 머독(79)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등도 은퇴를 모르는 글로벌 기업인으로 꼽힌다.
비즈니스위크는 “고령 CEO들의 최고 경쟁력은 오랜 경험”이라며 “호황과 불황을 수차례 겪었기 때문에 젊은 CEO들보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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